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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늘푸른숲의 거목들

절부(節婦)의 향기 박달목서


















 

박달목서     Osmanthus insularis Koidz.

 

제주도와 거문도 등지에 드물게 자생하는 물푸레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높이 15m, 지름1m까지 자라며, 10월 초순 지름 5mm정도의 작은 꽃들이

잎겨드랑이에 모여 피는 암수딴그루 식물이다.

 

 



 

 

제주도 서쪽 바닷가 마을에 몇 백 살인지 모를 박달목서 한 그루가 있다.

10월 초순에 하얀 꽃이 피면 짙은 꽃향기가 작은 포구를 감싸고 남는다.

이 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이곳에 전해오는 애틋한 이야기 때문이리라.


 

조선 후기에 이 마을에 살았던 강사철이란 어부와 그의 아내 고씨의 이야기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고기잡이 갔던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아내 고씨는 시신이라도 찾으려 한 달이 넘도록 바닷가를 헤맸지만 찾지 못하자,

나무에 목을 매어 남편을 따라갔다. 그 때 고씨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다.

기이하게도 그 다음날 그녀가 목 맨 나무 아래로 남편의 시신이 떠밀려왔다.

  

후일 신재우(慎栽佑)라는 선비가 이 애절한 이야기를 듣고 

그가 벼슬을 하게 되면 이곳에 열녀비를 세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과거에 낙방하여 낙담하고 있던 어느 날 꿈에 고씨부인이 나타나

한 번 더 과거를 보라고 해서 정말 급제를 하게 되었다.

그는 약속대로 이곳에 절부암’(節婦巖)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1866, 고종 3년에 있었던 일이다.

  

  

현 지명이 한경면 용수리인 이곳은 절부암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수백 살은 되어 보이는 고목 두어 그루와 그에 버금가는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사뭇 전설의 고향다운 분위기가 있다.

그 중 가지를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거목이 박달목서 숫나무이다.

고씨부인은 어쩌면 그 박달목서에 목을 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달목서의 박달은 예로부터 단단한 나무의 대명사로 씌어 왔고,

목서(木犀) 또한 물푸레나무를 지칭하거나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다.

물푸레나무는 재질이 단단해서 도끼자루나 괭이자루로 써왔다.

   

 

박달목서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 애틋하고 깊은 향기에 있다.

재배종인 금목서(金木犀)에서 추출한 향수 샤넬 NO.5가 유명하지만,

우리의 기호는 아무래도 토종인 박달목서의 향기일 듯하다.

절부암 바닷가에 흐드러지게 핀 박달목서의 꽃을 보며 

가신 님을 따라 열아홉에 목을 맨 열녀의 향기를 들었다.

 

 

2017.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