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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비양나무의 아마조네스


 


바위모시 (비양나무) 쐐기풀과

Oreocnide fruticosa (Gaudich.) Hand.-Mazz.

 

동남아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2.5m 정도 자란다.

암수딴그루식물로, 4월 초순에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5mm정도의 암꽃이 핀다,

제주도 서쪽의 비양도에만 작은 군락이 있고, 수그루는 관찰되지 않았다.

    

 

 

아마조네스Amazones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들의 집단이다.

그녀들은 사냥과 전쟁을 즐기며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만 길렀다.

종족 보전을 위해서는 이웃 부족을 습격하여 건장한 남자들을 납치해왔다고 한다.

브라질의 아마존강은 16세기에 스페인의 군인들이 남미의 강을 탐험하다가

여자들로 보이는 전사 집단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에 유래한 이름이다.



제주도 서쪽의 작은 섬에는 암그루들만 모여 사는 나무의 아마조네스가 있다.

비양도에서만 자라서 비양나무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어른 키 남짓한 높이에

4월에 연두색 잎이 나면서 잎겨드랑이에 자잘한 자주색 꽃이 핀다.

그 꽃들은 모두 암꽃이고 수꽃이 없기 때문에 씨앗을 볼 수가 없었다

 

주로 동남아 지역에 분포하는 이 나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수십 그루가 집단 난민처럼 이주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땅속에서 줄기를 뻗어가며 새로운 줄기를 내어 지금의 군락을 이루었지 싶다.

비양나무군락은 비양도에 있는 두 개의 분화구 중 북쪽 분화구 비탈에 있다.

섬에 방목하는 염소들로부터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책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혹쐐기풀이 번성해서 같은 쐐기풀과의 귀한 나무를 지카고 있다

 


비양나무의 아마조네스는 바다와 분화구와 철책의 3중 요새 속에 있는 셈이다.

종자를 만들지 못하고 땅속줄기를 뻗어가며 암그루만 늘어난 이 식물은

인위적으로 다른 지역에 옮겨 심지 않는 한 비양도에서만 살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비양나무로 불러주면 될 것을 국명은 바위모시로 붙여놓았다.

분화구의 화산토에서 자라는 이 나무에게 '바위모시' 이름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바위모시는 이 식물의 속명 'Oreocnide'를 고지식하게 번역한 것으로,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oreos와 모시풀을 지칭하는  cnide의 합성어다.


우리나라 식물 이름 중에는 최초로 발견한 곳의 지명을 따서 명명한 것이 많은데,

나중에 그것이 많은 지역에서도 발견되어 그 이름이 무색해진 사례가 더러 있었다.

그걸 염려해서 있지도 않은 바위에 사는 모시풀처럼 생뚱맞은 이름을 붙여 놓았을까? 

 


협재 해변에서 상아빛 모래와 맑은 옥색의 바다 건너 보이는 비양도는 환상 그 자체다.

비양도(飛揚島)라는 이름처럼 하늘에서 날아온 섬이라고도 하고,

천여 년 전에 바다에서 산이 솟고 화산이 폭발하여 탄생한 섬이라고도 하는 전설이 있다.

그러한 전설의 섬 분화구에 비양나무의 여인왕국이 있어서 더욱 신비롭다.

비양나무는 배우자가 없어도 나름대로 그녀들의 작은 왕국을 이루었는데,

아마조네스의 여인들은 납치해온 남자들로부터 어떻게 씨앗을 받아냈을까?

전설과 현실 사이를 부질없이 오가는 상상 또한 흥미롭다.

 

2018.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