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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사자(死者)의 나무 상산


   

상산(常山) Orixa japonica Thunb.


낮은 산의 숲에서 자라는 운향과의 갈잎떨기나무. 높이 1~3m 정도.

암수딴그루 식물로 4~5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5mm정도의 꽃이 핀다.

제주도, 전남, 경남지방과 충청도와 경기도의 해안 지대에 분포한다.

 

 

 

 

병원이 없던 옛날 사람들은 대개 집에서 죽음을 맞았다.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대체로 그러했던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집에서 모든 장례절차를 치렀는데 7일장이 기본이었고,

신분이 높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장례기간이 길었다.


보통 사람은 사방 백리의 일가친지들에게 부고를 돌리는 데 사흘쯤 걸렸지만,

큰 인물일 경우에는 온 나라에 부고를 알려야했기 때문이다.

부음을 받고서도 자동차가 없던 시대에는 며칠을 걸어서 문상을 가야했고,

글께나 하는 사람들은 긴 제문(祭文)을 준비해 가서 읽어야 했다.



그렇게 긴 장례기간 동안 시신은 부패했고 악취를 풍겼다.

옛 사람들은 시신이 썩는 냄새를 상산의 가지로 덮었다.

이 나무의 강한 향기가 고약한 냄새를 중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상산은 송장나무라는 으스스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한 사람이 살아서 쌓은 업은 죽음으로서 대개 용서를 받는다.

산 사람들은 망자의 허물은 덮고 선행은 크게 들추어 명복을 빈다.

상산의 가지도 그런 관용과 애도에 동참하듯 주검을 향기로 덮어준다.


(상산 덤불)

이 나무의 이름은 같은 이름을 쓰는 중국에서 건너온 듯하다. 

중국에서는 취상산臭常山이라고도 하므로 이를 실마리로

의미를 풀어 보자면 상산에서 나는 향기로운 식물정도가 된다.


상산은 홀로 자랄 때 사람 키 두 배 정도 크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함께 모여 가지가 얽히고설키는 덤불을 이룬다.

숲을 탐사하다가 만나는 상산의 무리는 마치 저승길이라도 가는 사람을

짐짓 만류하듯이 팔과 다리를 휘어감아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게 한다.


(상산의 열매)

상산은 4월에 꽃이 피고, 꽃잎이 4장이고, 수술이 4개이고, 4개의 씨앗을 만든다.

옛사람들은 죽을 사()자와 발음이 같은 숫자 4()를 되도록 쓰지 않았는데,

일부러 말을 만들다 보니 상산은 그 용도와 형태가 이렇게 죽음과 엮어진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한자로 상산(常山)으로 표기하는 이 나무가

나의 느낌 속에는 사자(死者)의 나무, 상산(喪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7.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