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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부르고 싶지 않은 이름 채진목(采振木)




 

채진목(采振木)

Amelanchier asiatica (Siebold & Zucc.) Endl. ex Walp.

 

제주도의 중산간지대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

12m 높이까지 자라며,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잔가지는 적갈색이다.

4~5월에 지름 3.5cm 정도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핀다.

  

 

 

 

채진목은 봄에 하얀 꽃을 풍성하게 피우는 나무다.

이 나무를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산간지대에서 아주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수종이라고 한다.



채진목은 일본명인 자이후리보꾸(采振)를 그대로 가져온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에 발간된 <조선삼림식물도설>에 처음 등장했으므로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일본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의 자료에는 꽃차례가 채배(采配)를 닮아서 유래한 이름으로 나와 있다.

채배는 옛날 일본의 장수들이 쓰던 지휘봉으로 우리말 사전에는 없는 낱말이다


 이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서는 채진목을 볼 때마다

임진왜란 때 이 땅을 짓밟았던 가토오 기요마사나 코니시 유키나가가

채배를 들고 설치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식물명이라고 할지라도

그 이름에 공감이 되고 공통된 정서가 있으면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말 사전에도 없고, 남의 나라 장군이 쓰던 지휘봉에서 나왔다는

이름의 유래를 뻔히 알면서도 부르자니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옛 일본의 장수들이 지휘봉으로 쓰던 채배 (왼쪽 그림))


북한에서 이 나무를 독요나무라고 하는 걸 보면,

북한 땅에도 이 나무가 자라는 모양이다.

그런데 독요라는 말도 우리말 사전이나 북한말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상상력을 억지로 끌어내서 비슷한 의미를 만들어보자면,

장수가 진두에 나가 독전을 할 때 쓰는 ’(살펴볼 독)자와

전장에서 휘하 장수들을 불러 모을 때 흔드는 초요기’(흔들 요)자를 조합해서 지휘봉의 의미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해석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줄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독요를 일본의 채진으로 봐 주더라도 여전히 일본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더러 이 나무의 이름을 지으라고 한다면 제기나무로 부를 것이다.

이 나무의 꽃은 꽃잎이 아주 길어서 어릴 적에 차며 놀던 제기를 떠올리게 한다.

옛날에는 엽전을 한지나 습자지로 싸서 만들었기 때문에 꽃의 흰색까지도 닮았다.



제기차기는 외다리 차기, 두 다리 차기, 한 발을 계속 들고 차는

세 가지 방법으로 찬 횟수를 모두 합해서 승부를 정한다.

그 다음에는 적게 찬 아이가 많이 찬 아이에게 야구의 투수처럼,

그러나 공손한 언더스로우 자세로 세 번 제기를 매기고

승자는 투수가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제기를 멀리 차내야 한다.

이 때 차낸 제기를 매긴 사람이 바로 받아버리면 공수가 교대되고,

제기를 제대로 차서 나뭇가지에라도 걸리면 홈런이나 마찬가지다.


채진목의 꽃은 멀리 걷어 차낸 제기가 나뭇가지에 걸린 모습처럼 핀다.

제기나무로 불러주면 그 옛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던 제기가 생각나고,

그 때 어울려 놀던 고향의 코흘리개 동무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 뜻 모를 왜국의 식물 이름을 언제까지 써야할 것인가.



2017. 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