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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낙엽지는 떨기나무

탱자나무를 넘은 의리





















  

탱자나무

Poncirus trifoliata (L.) Raf.

 

전국에 분포하나 주로 남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운향과의 갈잎떨기나무.

최대 8m까지 자라고, 민가나 경작지 주변에 울타리용으로 널리 심는다.

4~5월에 지름 5cm정도의 꽃이 피며 향기가 있고,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집은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있다.

그의 유배 생활에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가혹한 조치가 더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리안치란 죄가 위중할 경우, 집 둘레에 가시울타리를 치고 출입문을 밖에서 잠그며,

식량은 열흘에 한 번씩 넣어주고, 불시에 고을수령이 감시 상태를 점검하는 가혹한 유배다.



추사는 세도가인 안동김씨 일문의 눈에 벗어나 같잖은 빌미로 유배를 당하지만,

정치적 위험인물에게나 적용하는 위리안치까지 처해야 할 사안이 아니었다.

유배지를 에워싼 탱자 가시는 추사에 대한 세도가들의 경계심에 다름이 아니었다.

추사의 제자이자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당시 서슬 퍼런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주까지 먼 길을 찾아와 청나라에서 구해온 서적과 요긴한 물품을 전달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작품이 세기의 걸작이자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歲寒圖).

세한도는 추사가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담아 그린 작품인데,

상적은 역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이 그림을 가져가서 그곳의 학자들에게 자랑을 했다.

 세한도를 보고 감탄한 청나라 문사들이 감상문과 찬사를 쓴 것이 16편이 되었고,

상적은 다시 제주로 와서 추사에게 그 글들을 보여주니 추사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세한도는 원래 가로 1미터 크기였으나 청나라의 댓글들이 달려서 14미터가 되었다.



위리안치, 탱자나무 가시울타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제자 이상적 외에도

추사에게 배움을 청하러 오는 인사들과 유배지 인근의 서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탱자나무의 징벌적 의미는 퇴색하고 선비의 강직한 기상으로 반전된다.

추사의 유배지 담장을 둘러싸고 봄에 피는 탱자꽃 향기와

가을에 노랗게 익는 짙은 탱자향은 선비의 향기로 다가온다.

 

2018.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