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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5 남녘 나무에 피는 꽃/덩굴로 자라는 나무

으름에 포원이 졌던 까닭



 














으름덩굴                으름덩굴과

Akebia quinata (Houtt.) Decne.


중부 이남의 산지에 분포하며 남부지방에 흔하다.

낙엽 덩굴성 목본으로 잎은 5~7장의 작은잎으로 된 겹잎이다.

4~5월에 한그루에서 암꽃과 수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갈라져서 달콤한 과육이 드러난다.

 

  


  

나는 열 살이 될 때까지 경상도의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서쪽 골짜기에서 동쪽 산모롱이로 개울이 흘러가는 외진 동네였다.

이방인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쯤 오는 엿장수, 기름장수, 옹기장수, 구리무장수 정도였다.

 

하루는 동네에 예수가 돌아다닌다고 아이들에게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내 고향 사투리로 예수 무덤을 파먹고 사람을 홀린다는 '여우'였다.

그 때 마을에 왔던 예수는 기독교 선교사나 전도사였으리라고 짐작이 되지만,

집안에 갇혀있느라 나는 십 년에 단 한 번 왔던 외계인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산골에서 유년을 보내면서 으름을 단 한 개밖에 맛보지 못한 건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달콤하고 신비로운 향이 나는 으름을 한 번 먹고 나서 포원이 졌다.

사전에서 포원抱冤원한을 품다라고 뜻풀이가 되어있지만,

너무나 가난했던 당시 고향 사람들은 주로 맛있는 것에 포원이 졌다. 

얼마나 귀하고 오죽 먹고 싶었으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나 싶다.

 

식물공부를 하면서 으름은 중북부 지대에는 드물게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팔십 노인 여남은 분만 고향을 지키고 있지만,

그 때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해도 50명이 넘었다.

깊은 산에서 드물게 자라는 으름을 그 많은 아이들이 먹고, 어른도 먹고,

동물들이 먹었을 터이니 10년에 한 번 먹었던 까닭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마을에 중학생은 없었다. 국민학교만 마치면 선택의 여지 없이

바로 씩씩한 청년 농군이요 음전한 처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애들은 산에 가서 바로 따먹기도 했으리라.

    

 

두어 해 제주도에 사는 동안 그렇게 포원이 졌던 으름을 맛보았다.

그런데 그 옛날 신비롭고 달콤하던 맛은 밋밋해지고 씨앗은 왜 그리 많은지,

단 한 개로 수십 년 묵은 원풀이에 족했다.

지난 세월이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듯, 내 혀도 간사하고 사치스럽게 타락시켰나 보다.

 

내 입맛을 바꾼 건 그러려니 하지만 세월이 저지른 정말 고약한 짓거리가 있다.

어릴 적에 같이 놀던 동네 계집아이들 참한 얼굴에 함부로 주름살 그어놓고

그 여리여리하던 몸집을 장독처럼 만들어 놓은 짓이다.


2018. 3. 15.



    

멀꿀           으름덩굴과

Stauntonia hexaphylla (Thunb.) Decne.

 

서남해안지대와 제주도의 숲에 자라는 상록성 덩굴로, 잎은 3~7개의 작은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이다. 4~5월에 녹백색 또는 분홍색 줄무늬가 있는 꽃이 핀다. 가을에 길쭉한 구형으로 익는 열매는 으름처럼 벌어지지 않으며 과육이 매우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