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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백두의 줄기에서

죽대아재비가 꽃을 감춘 까닭

 




왕죽대아재비

Streptopus koreanus (Kom.) Ohwi

 

높은 산의 침엽수림에 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cm가량.

6~8월 개화.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긴 꽃자루 끝에 지름 5mm 정도의 꽃이

1개씩 달린다. 죽대아재비는 꽃자루에 마디가 있고, 잎이 줄기를 감싼다.

[이명] 큰죽대, 왕섬죽대, 큰잎죽대아재비, 좀죽대아재비

 

 

 

 

 


죽대아재비는 참 신기하게 생긴 식물이다. 

얼핏 보면 잎에서 꽃줄기가 나와서 꽃을 매달고 있는 듯 한데,

자세히 보면 줄기에서 나온 가느다란 꽃줄기가 옆으로 휘어서

잎 가운데 넓은 그늘 쪽으로 숨어서 꽃을 매달고 있다.

 

오른쪽 잎겨드랑이에 난 꽃줄기는 오른쪽 잎 그늘로,

왼쪽 꽃은 왼쪽으로 자란 잎 그늘로 들어가 숨는다.

어미 날개 속으로 숨어든 병아리들 같은 이 꽃들은

분명 잎 뒤로 숨어 들어간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산에는 죽대아재비의 사촌뻘인 금강애기나리가 산다.

금강애기나리는 줄기 끝에 두어 송이의 꽃을 피우는데,

죽대아재비와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꽃을 잎 위로 올려서 핀다.

 

 

두 가지 식물 모두 해발 1000미터 이상의 높은 지대에 산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곳에서 피부에 닿는 햇살은 확실히 달랐다.

죽대아재비가 자라는 백두산의 침엽수림에서는 여름의 강렬한 햇살이

여과 없이 들어와 눈이 부시고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엷은 꽃잎은 잠시라도 햇살에 닿으면 그대로 타버릴지도 모른다.

 

금강애기나리도 높은 산에 자라는 식물이지만

그곳은 대체로 습도가 높고 어두운 활엽수림이다.

햇살이 들어오더라도 습도 높은 공기층을 통과한 볕은 부드럽다.

그렇더라도 꽃을 위로 쳐들고 있으니 주근깨가 생기기 십상이다.

 

 

죽대아재비가 남한 지역에도 자생한다는 기록은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어디서 목격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니 꽤 귀한 식물인 듯하다.

내가 백두산에서 만난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왕죽대아재비였다.

죽대아재비는 잎자루가 줄기를 감싸고 있는 반면에,

왕죽대아재비는 그렇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죽대는 만나지 못하고 그 아재비부터 만나버렸다.

백두산에서 돌아오고 나서야 ‘죽대’를 수소문해보니,

죽대는 그리 희귀한 식물은 아니라고 한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주로 사는데,

둥굴레와 모양이 비슷해서 보고도 무심히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자료를 보니 ‘죽대’는 그 이름대로 대나무 줄기와 잎의 모양을 닮았다.

언젠가 죽대를 만나서 백두산에 사는 아재비의 모습을 전해줘야겠다.

 

 

2013. 3. 22.에 쓰고 2017. 1. 4. 에 고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