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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백두의 줄기에서

발해의 옛 땅에 사는 가래바람꽃


 


가래바람꽃

Anemone dichotoma L.

 

양지바른 습지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0cm가량.

줄기 윗부분이 2갈래로 갈라지며, 잎 또한 깊고 긴 갈래로 갈라진다.

6~7월 개화. 꽃의 지름은 1.5cm 정도로 보통 한 개체에 1개의 꽃이 핀다.

백두산 주변 등 북반구의 아한대지방에 분포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대한민국 땅에 살지 않는 식물들도 있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백여 종은 족히 넘을 것이고

이들은 거의 백두산과 한만국경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식물들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상 영토 밖의

식물들까지 우리 호적에 올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남북이 갈라지기 전에 북쪽에 있었던 식물은 이미 목록에 올라가 있고,

그 후에 백두산의 중국 쪽 영역이나 국경부근에서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을 때

그 식물이 북한 땅에도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 이름을 붙이지 싶다.

어쩌면 그 불확실한 믿음보다는 그 땅이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무대였고, 지금도 그 곳에 우리 민족이 살고 있다는

연고때문에 그곳의 식물을 탐사하고 이름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래바람꽃이 그런 식물들 중의 하나이다.

이 식물은 두만강변으로부터 만주벌판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래바람꽃은 식물체의 크기에 비해 그 형태가 지극히 단순하다.

줄기는 Y자, 잎은 6장, 긴 꽃줄기 하나에 꽃 하나 피는 것이 전부이다.

잎은 줄기가 갈라지는 곳과 줄기 끝에서 잎자루 없이 두장씩 마주나고,

잎마다 세 갈래로 갈라지기 때문에 돌려나기 잎 6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가래바람꽃을 처음 볼 때는 잎이 깊게 갈래져서 유래한 이름인가 했더니

차상분지하는 가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한국 식물명의 유래, 이우철)

차상분지(叉狀分枝)란 중심 줄기에서 곁가지가 나오는 모양이 아니고

하나의 줄기가 같은 굵기의 Y자 형태로 갈라지는 가지치기 형태이다.

가래바람꽃의 종소명인 dichotoma가 바로 차상분지라는 뜻이다.


  

가래갈래의 옛말로, ‘가래바람꽃갈래바람꽃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전에는 또 다른 의미의 가래가 표준말로도 서너 가지가 더 나온다.

큰 삽처럼 생긴 농기구 가래, 가래나무 열매 가래, 사람의 타액 가래,

물풀의 일종인 가래 등이 있어서, 그 이름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래바람꽃이라고 했더니 어느 가래인지 생각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 꽃을 발해바람꽃으로 부르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낀다.

고구려와 발해의 땅에 살았던 백의민족의 흔적으로 보이기 때문인지,

그 광야에서 말달리던 조상들의 유전자가 꿈틀대는 탓인지는 알 수 없다.

가래바람꽃이나 발해바람꽃이나 발음까지 비슷해서 더욱 그러하다.

 

2016.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