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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백두의 줄기에서

신의 정원에 사는 나도옥잠화


 


나도옥잠화

Clintonia udensis Trautv. & C.A.Mey.

 

고산의 반그늘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20~80cm.

꽃줄기에는 잎이 달리지 않는다. 잎이 두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5~6월 개화. 꽃줄기 끝에 작은 꽃 3~5개가 총상꽃차례로 핀다.

꽃이 핀 다음 꽃줄기가 길게 자라고 짙은 남색의 열매가 달린다.

 

 









 

고고한 기품에 정신마저 아득하고

땀 흘리며 헤맨 수고도 잊은 채 넙죽넙죽 절 하였습니다

 

어떤 꽃벗이 나도옥잠화를 처음 만나고 남긴 소감이었다.

이 꽃은 손꼽는 명산인 설악산, 함백산,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을

올라야만 알현할 수 있으므로 말 그대로 고고할 수밖에 없다.


(백두산 지하삼림의 나도옥잠화)

백두산 자락에서는 이 꽃을 평탄한 숲에서 드문드문 만나게 된다.

산의 가파른 경사가 나오기 전의 높이가 해발 1800미터 정도지만

그곳에서는 그 높이를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평지의 숲이다.

문득 6월에도 산기슭 그늘에 남은 잔설이 눈에 들어오고

어두운 숲에서 하얀 입김을 보고서야 그 곳의 높이를 깨닫는다.

 

그 숲은 습도가 높아서 바닥이 온통 이끼와 양치류로 덮여있다.

통제된 탐방로를 벗어나 인적이 거의 없는 곳으로 일탈을 하면

태고의 신비가 감도는 신의 정원에 몰래 들어간 기분이 된다.

나도옥잠화는 이런 비경의 구석구석에서 하얀 요정처럼 빛난다.

우리나라 명산의 높은 숲도 이따금 안개와 구름에 덮일 때는

이 꽃이 여기 저기 핀 숲에서 산신령이 나타날 만한 비경이 된다.


(함백산의 나도옥잠화) 

나도옥잠화는 화초로 기르는 옥잠화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옥잠화는 희고 긴 꽃봉오리가 옥비녀를 닮아서 유래한 이름이지만,

나도옥잠화는 같은 백합과라는 것밖에는 옥잠화와 비슷한 곳이 없다.

대체로 옥잠화는 볕을 잘 받는 화단에서 가꾸는 꽃으로,

잎이 얇고 꽃봉오리는 긴 비녀 같고 꽃은 나팔모양이다.

나도옥잠화는 그와 정반대로 높은 산의 반그늘에서 살고,

잎은 두터우며 꽃은 옥잠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런데 나도옥잠화의 이름에는 나도 옥잠화로 좀 봐달라는 주문이 있다.

옥잠화의 꽃이 크고 아름다워서 화단에서 사랑받는 꽃이기는 하나

신의 정원에서 사는 신성한 꽃, 명산의 높은 곳에서 해마다 참배객들의

알현을 받는 고귀하신 몸이 화단의 꽃이 부러울 리가 없다.

안개속의 요정이거나 산신령의 애첩으로 여길만한 이 꽃에게

나도옥잠화는 세속의 눈으로 함부로 붙인 명예훼손이라고나 할까...

 

 

2016.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