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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제피로스가 숨긴 연인 난쟁이바위솔


 



난쟁이바위솔

Meterostachys sikokianus (Makino) Nakai

 

높은 산의 바위에서 자란다. 높이 5~10cm 내외.

잎은 줄기 끝에 밀생하고, 육질이며 선형이고 길이는 1cm 내외이다.

8~9월 개화. 꽃받침조각과 꽃잎은 각각 5, 길이는 5mm 정도이며,

수술은 10, 씨방은 5개이다. 전국의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난쟁이바위솔을 처음 만난 곳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이었다.

아무래도 바위에 식물이 붙어살려면 수분이 우선 필요할 것이므로

구름과 안개와 비가 자주 적셔주는 높은 산의 바위여야 할 것 같다.

그런 산은 가끔 구름모자를 쓰고 위엄과 신비를 보여주는 명산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 식물이 사는 산은 명산으로 쳐줄만 한 것이다.

 

해발 1,614미터의 덕유산 꼭대기에서도 난쟁이바위솔을 만났었다.

그곳에도 바위들이 많이 있었는데 한 가지 흥미로웠던 사실은

난쟁이바위솔은 대부분 바위 서쪽면의 틈새에서 자라는 것이었다.

 

우선 바위의 서쪽 면에 수분이 많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오후의 햇볕이 바위를 더 많이 덥히고 이어서 고산의

추운 밤이 오면 서쪽 면에 가장 이슬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북반구에 있는 우리나라는 주로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서

구름이나 비바람이 올 때도 서쪽면에 더 많이 몰려올 법하다.

 


배움이 짧은 사람이 어설픈 추리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바위틈에 귀여운 애첩을 숨겨두었다고 눙치는 게 편하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은

동풍의 신 에우로스와 서풍 제피로스’, 남풍 노토스’, 북풍 보레아스들이다.

그리스 역시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북반구의 나라여서 그런지 서풍의 신 외에

다른 바람의 신들은 별로 기억나는 스토리도 없는 제피로스의 들러리로 보인다.

 

바람꽃 아네모네가 제피로스의 연인이라고 하지만 제피로스가 워낙

바람둥이인지라 난쟁이바위솔도 몰래 숨겨 둔 또 하나의 연인일지 모른다.

촉촉한 초록이끼 위에 매끈하고 팽팽한 잎을 펼치고

꽃이 피기 전에는 별모양의 꽃봉오리를 하고 있다가 꽃이 피면

새하얀 꽃잎에 빨간 꽃술이 고혹적인 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사람 사는 세상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높은 산에 사는 꽃에게

난쟁이바위솔이라 이름 붙인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멀쩡한 식물에게 장애가 있는 이름을 붙인 것도 몹쓸 일이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면 장애우들이 용납하겠는가?

애기바위솔이라 부르면 제피로스도 참 좋아할 텐데 말이다.

 

2016.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