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무용의 용(無用之用)을 깨달은 박새


 


박새

Veratrum oxysepalum Turcz.

 

높은 산의 숲이나 풀밭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5m 정도. 원줄기는 곧게 자라며 속이 비어 있다.

6~8월 개화. 지름 7mm 정도의 작은 꽃들이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김현표 님 사진)


 








 

높은 산의 숲이나 초원에서는 어김없이 박새의 무리를 만나게 된다.

이 박새가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곳은 왠지 청정한 느낌이 든다.

모르기는 해도 이 식물에 강한 독성이 있어 벌레들이 얼씬대지 않고

그들의 먹이사슬을 형성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한 포기의 면면을 보더라도 박새보다 훤칠한 풀을 알지 못한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의연한 대인의 풍모가 보인다고나 할까.

박새는 줄기를 곧게 세워 어른의 턱밑 높이 정도로 자라고,

흰 바탕에 녹색이 도는 듯한 작은 꽃들을 가지런하게 피운다.

평행의 주름선이 아름다운 잎은 수명을 다하여 마를 때까지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으며 벌레가 갉아먹지 못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식물들을 삶에 유용하게 이용해 왔다.

식물에서 입을 것과 먹을 것과 향료와 약을 구했고, 목재로 집을 짓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보기에 좋은 화초로 개량하여 심었다.

수 만 종의 식물에서 쓸만한 성질을 이용하는 지혜를 가진 인류가

조금이라도 이용하지 않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 보면 박새는 이용당하지 않는 지혜를 가진 대단한 식물이다.

 

사려 깊지 못한 사람들이 가끔 박새에게 봉변을 당하기는 한다.

봄철에 나온 박새의 어린잎을 산마늘로 알고 먹어서 탈이 나는 경우다.

산마늘도 박새와 같은 백합과의 식물이어서 싹이 아주 닮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산마늘의 싹과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임영희 님 사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직감으로, 그리고 잎집이 발그스레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산마늘을 채취하는데 실수가 없다.

자신이 없으면 잎 냄새를 맡아보고, 살짝 씹어서 마늘향이 없고

씁쓸한 맛이 나면 뱉어내고 입안을 물로 헹구어내면 그만이다.

그나마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맹독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사람이 정의한 독()이란 식물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식물체 자신을 구성하는 육신이자 체액이고 정기일 뿐으로,

조심해야할 어떤 성질에 이름을 붙인 사람의 관념, 즉 허상이다.

박새는 인간과 곤충과 그 밖의 알지 못하는 것들에게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그의 삶을 온전하게 하는 무용의 용(無用之用)을 깨달은 듯하다.

박새는 장자의 지혜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도인(道人)과 같.

 

 

2016.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