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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불쌍한 무대를 닮은 백운란



      

백운란

Kuhlhasseltia nakaiana (F.Maek.) Ormerod

 

숲속 그늘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난초. 높이 5~12cm.

줄기가 옆으로 기다가 윗부분은 서고 마디가 있다.

7~8월 개화. 꽃의 크기는 7~8mm이고, 입술꽃잎은 역T자형이다.

울릉도, 제주도, 전남, 충남 등지에 드물게 분포한다.

 






 

 

백운란의 독특한 꽃을 볼 때마다 못난 무대가 먼저 생각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고한 만화가 고우영 화백의 '만화 수호지에서

반금련의 남편으로 나오는 착한 무대의 캐릭터이다.

<한국만화사 산책> (2005. 살림출판사)이란 책에서는 무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리본으로 묶은 머리카락에다 커다랗게 삐쳐 나온 쥐 이빨,

단춧구멍만한 눈을 천진난만하게 껌뻑거렸던 무대 ...

  

수호지에는 108인의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지만 고우영 화백이 그린

만화에서는 그많은 호걸들보다는 단연 무대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1970년대의 대학생들은 '무대 팬클럽'을 결성했을 정도로 열광했다.

보잘 것 없는 외모에다 겁쟁이에 어리숙하기까지 한 떡장수 무대는

어쩌다 반금련이라는 절세의 미인이자 요부를 부인으로 맞게 된다.

결국 그녀의 정부 서문경에 의해 죽고 마는 무대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무기력한 젊은이들과 동병상린한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듯하다.

 

백운란의 꽃은 아주 작은 편인데 유난히 순판만 크게 삐쳐 나와서

고우영의 무대 캐릭터에서 커다랗게 부각된 그의 앞니(상악)를 닮았다.

꽃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백운란은 무대처럼 키가 작고 볼품이 없어서

외모로만 보자면 우리나라의 108가지 쯤 되는 멋진 난초들에 영 못 미친다.


  

전남의 백운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백운란으로 불리게 된 이 난초는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될 정도로 드물게 만나지는 난초이다.

해마다 백운란을 보고자 깊은 숲을 헤매는 까닭은,

이 식물이 귀해서도 아니고 아름다워서도 아닌, 오직 그 무대

그를 보고 즐거워했던 학생시절의 추억이 그리운 까닭일는지도 모른다.

어느 깊은 숲속의 교태스런 나무뿌리 앞에서 만난 한 포기 백운란은

반금련의 농염 앞에서 무기력한 무대의 모습 그 자체였다.

 

2016.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