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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감자난초를 만나면 생각나는 옛일




    감자난초

Oreorchis patens (Lindl.) Lindl.

 

숲이나 계곡의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난초. 높이 25~70cm.

줄기 밑 부분이 부풀어져 알줄기를 형성한다. 잎은 1장 또는 2장이 난다.

5~7월 개화. 8~12mm 정도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한다.

 





  

감자난초는 초여름의 산행길에서 운이 좋으면 만나는 난초다.

쉽게 볼 수 있기로는 백여 종의 난초 중에 서너 번째쯤 될 것이다.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에서 감자난초의 군락을 처음 만났을 때,

감자와 비탈의 고장에서 무리지어 누렇게 피운 꽃들이

감자색으로 보이기도 해서 그래서 감자난초인줄 알았다.  

 

감자난초는 땅속의 덩이줄기가 감자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었다.

땅속줄기의 모양에서 이름을 붙인 난초는 감자난초 외에도

손바닥난초, 방울난초, 새둥지란, 새우난초, 산호란 등이 있다.

백 가지가 넘는 난초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르게 붙여주자니

땅속에 있는 줄기까지 살펴서 이름 지은 학자들의 고민이 보인다

 

 

감자난초의 속명 Oreoorchis는 그리스어로 산이나 바위라는 뜻의

oreos’와 남성의 고환을 뜻하는 ‘orchis'의 합성어다.

그렇다면 우리말로 산불알란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감자와 불알은 그 형상이 비슷해서 쉽게 이미지가 전이된다.

 

어릴 적 고향에 감자불알이라고 놀림 받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이 분은 부부가 6.25때 북에서 피난을 오면서 자식을 잃어버리고

동네 뒷산에 움막을 짓고 약간의 화전을 일구며 어렵게 살았는데

은근히 텃새가 있는 토박이들은 이북쟁이라고 부르며 업신여겼다.

하루는 이 아주머니가 남의 집 감자밭에서 오줌을 누는 척하면서

고쟁이에 감자 몇 알을 슬쩍 집어넣는 것을 우연히 동네사람이 보고는

그 여자는 거시기 밑에 감자불알이 달렸더라는 소문을 냈다.

김동인의 '감자'처럼 가난이 사람을 슬프게 만든 사건이었다.


(김병만 님 사진)

 

감자는 182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1890년대 이후부터

강원도와 함경도, 평안도 등 산간지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다가

일제강점기에 들면서 감자 재배 면적이 급격하게 늘었다.

일제가 쌀을 공출하면서 대체식량으로 감자를 보급하였기 때문이다.

 

감자는 오랜 세월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이 되어준 작물이고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끼니의 절반을 감자로 때우다보니

어쩌다 산중에서 만나는 감자난초가 그 이름만으로도 반갑다.

감자난초는 그 불알만 감자를 닮은 것이 아니고 꽃도 감자색이고,

감자를 캐는 계절에 감자처럼 푸짐하게 피는 꽃이다.

 

2016.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