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신비에 싸인 비비추난초의 밤


 


비비추난초

Tipularia japonica Matsum.

 

어두운 숲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난초. 높이 20~35cm.

뿌리는 알줄기 밑에서 나고 알줄기 사이는 땅속줄기가 연결된다.

잎자루가 긴 잎 1장이 가을에 나와 여름에 지고 뒷면은 자주색이다.

5~6월 개화. 꽃의 크기는 4~7mm이고, 입술꽃잎은 3갈래이다.

제주도와 남해안지방, 안면도 등지에서 발견된다.

 

 




 

오월의 숲에서 비비추난초를 찾다가 반짝이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봤더니 거미가 비비추난초 꽃 바로 아래서 꼼짝 않고 있었다.

몸체가 은빛으로 반짝이는 걸로 봐서는 백금거미의 한 종류로 보였는데

이렇게 거미가 눈에 잘 띄면 어떤 멍청한 벌레가 접근할까 궁금했다.


  

비비추난초의 국명은 잎이 비비추의 잎을 닮은 데서 붙은 이름이고,

속명 Tipularia 는 각다귀류를 뜻하는 라틴어 tipula에서 유래한 것으로, 

비비추난초의 꽃이 하루살이 같은 작은 날벌레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을만한 자료에 의하면 비비추난초는 꽃가루 덩이를

각다귀류가 아닌 밤나방류의 눈에 붙여서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짝이는 거미와 비비추난초의 거래가 어렴풋 짐작이 된다.

각다귀든 밤나방이든 야행성 곤충이므로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마 전등을 켜고 관찰한다면 우리가 기대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적외선 장비를 구할 능력은 없으므로

밤에 일어날 만한 일은 추리와 상상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야행성 곤충은 대개 밝은 빛이나 밝은 물체를 보고 접근한다.

몸체가 밝게 빛나는 백금거미가 멀리서 이들을 불러들인다.

거미의 밝은 빛을 보고 접근한 작은 날벌레들은 비비추난초 꽃을

짝짓기 대상으로 착각하거나 어떤 냄새에 이끌려 꽃에 머리를 들이민다.

가벼운 진동에도 몸의 색깔이 순간적으로 쵸콜렛색으로 변하는

금빛백금거미는 이제부터는 눈에 띄지 않고 먹이를 기다린다.

  날벌레가 꽃에 들어가면 위에 있던 꽃가루 덩이가 눈에 달라붙어

순간적으로 실명을 하게 되고, 얼떨떨해진 곤충은 다른 꽃에

머리를 비벼 꽃가루 덩이를 떼어내려고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운 좋은 녀석은 수건돌리기하듯 꽃가루가 떨어진 다른 꽃에다

눈을 비벼 꽃가루를 붙이고, 운이 나쁜 녀석은 거미줄에 걸린다.

  

 

이 추리가 크게 틀리지 않다면 비비추난초는 거미와 좋은 동업자다.

이 난초의 꽃이 피는 초여름은 야영하기에도 알맞은 계절이다.

한 열흘 텐트를 치고 이들의 밤일을 지켜볼 방법도 궁리해보았지만

실행에 옮기기에는 핑계가 너무 많은 것이 아마추어의 한계다.

그런데 비비추난초는 밤처럼 어두운 숲에서 자라므로

어쩌면 낮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는지 모른다.

  

 

2016.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