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나도 바람이 되고픈 나도바람꽃



  나도바람꽃

Enemion raddeanum Regel


산지의 습하고 그늘진 숲 속에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20~40cm. 줄기잎은 보통 1장으로 3갈래씩 2차례 갈라지는 겹잎이다.

4~5월 개화. 지름 10~15mm 정도의 꽃들이 우산꽃차례로 달린다.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인다. 지리산 이북에 주로 분포한다.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정해종의 시,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나도바람꽃을 대상으로 쓴 시가 아니지만

이 구절만 오려서 보면 꼭 나도바람꽃의 독백처럼 들린다.


  

나도바람꽃은 4월의 바람이 불어야 피는 꽃이다.

4월은 겨우내 언 땅에서 봄을 준비하던 싹들이 꽃을 피우고

사람들은 봄바람 꽃바람에 들떠서 무작정 싸돌아다니고 싶고

새들도 짐승들도 짝짓기에 부지런한 약동의 계절이다.

나도 바람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생명의 계절이다.

 

정해종의 시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라는 구절에서는

뭔가 불안야릇한 분위기로 읽는 이들을 긴장시키다가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로 이어지며 편안한 반전을 이룬다.

모르기는 해도 자유로운 존재로의 승화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는 우연하게도

나도바람꽃의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바람꽃은 진짜 바람꽃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운 이름이다.

학명으로 살피자면 대부분의 바람꽃은 Anemone 속인데 비해

나도바람꽃은 홀로 Enemion 속으로 왕따를 시켰기 때문이다.

아네모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부인이자 꽃의 여신인 플로라의

시녀로, 제피로스와 바람을 피다가 들켜서 꽃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나도바람꽃이 억울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네모네Anemone 이네미온Enemion으로도 썼기 때문이다. 

그 이름만으로는 나도바람꽃도 바람꽃과 같은 꽃이므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은 일리가 있다.


.

2016.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