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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깊은 숲 산중에서

으름난초가 으름을 닮았다니



 

으름난초

Cyrtosia septentrionalis (Rchb.f.) Garay


산지의 숲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 난초. 높이 20~100cm.

줄기는 곧게 서고 국내의 난초과 식물 중 유일하게 가지를 친다.

부생란으로 굵은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비늘조각 잎이 있다.

6~7월 개화. 꽃의 크기는 1cm 정도이며 열매는 고추모양이다.

제주, 전남, 충남, 경북 등에 드물게 자생한다.

 

 




으름난초는 누가 뭐래도 난초들의 대왕이다.

백 가지가 넘는 우리나라의 야생란 중에서 가장 크게 자라며,

줄기에서 가지를 치는 난초도 이 으름난초뿐이다.

어두운 숲속에서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위엄은 금관을 닮았고,

그 열매 또한 신라금관의 곡옥을 떠올리게 한다.


  

식물체가 썩은 부엽토에서 영양을 섭취하는 이 부생난초는

초여름에 땅속에서 줄기를 올리기 시작해서 한여름에 꽃을 피우며,

여름이 가기 전에 열매를 맺고 거대한 몸집은 흙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여름 한철 동안에만 1미터 가까이 자라는 힘은

풍부한 유기물을 섭취한 굵은 땅속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으름난초의 이름은 열매가 으름을 닮아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열매가 으름과 비슷하다고 보아지지 않았다.

으름난초는 1949년에 발간된 <조선식물명집>에서 처음 나온 이름으로,

<한국 식물명의 유래> (2005. 이우철)에는 땅으름덩굴이라는 뜻의

일본 이름 쯔찌아케비 ツチアケビ에서 유래했다고 나와있다.

 

(으름난초의 열매는 고추를 많이 닮았다. 왼쪽으로부터 으름덩굴 열매, 으름난초 열매, 고추)  

 

그렇다면 광복 이후에 이 난초의 이름을 정했다는 말인데

이 책을 쓴 학자들에게는 정말 이 열매가 으름처럼 보였을까?

으름난초가 자생하는 제주도의 깊은 숲을 답사하기도 어렵고

칼라 사진처럼 선명한 이미지도 주고받기 어렵던 시절에

이 식물에 대한 정보를 자료로만 접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이름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나라 근대 식물학의 개척시대에

그분들의 노고가 짐작은 되지만, 이렇게 실제와 다르면서

일본명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름은 옥의 티처럼 여겨진다.

으름난초는 외형적, 생태적 특징이 너무도 뚜렷해서

대왕난초, 금관난초, 가지난초, 여름난초, 고추난초, 우람난초 등등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이름 후보가 많지 않은가.

 

2016.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