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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남도와 섬들에서

제주의 슬픈 진혼곡 실꽃풀


 



실꽃풀

Chionographis japonica (Willd.) Maxim.

 

산지의 계곡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cm 정도.

뿌리잎은 주걱모양으로 뭉쳐나고 줄기잎은 좁은 피침모양이다.

5~7월 개화. 여러 개의 꽃이 아래로부터 이삭꽃차례로 핀다.

꽃잎(꽃덮이 갈래조각)이 실같이 가늘어서 유래한 이름이다.

 

 



 



 

제주의 깊은 숲은 낮에도 무서울 정도로 어둡다.

검은 현무암의 바닥은 때로 크고 작은 숨골과 동굴로 이어지며

느닷없이 깊은 협곡이 나타나기도하고 작은 분화구가 되기도 한다.

온난하고 습도 높은 기후가 수목을 울창하게 키우고 흙을 찾지 못한

뿌리들은 검은 바위들을 뱀처럼 휘감으며 거센 바람을 견딘다.

 

제주의 깊은 숲에는 역사의 아픈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섬 하나하나마다 최후의 일인까지 저항하려고

평화로운 섬 제주의 깊은 숲에도 군사도로를 거미줄처럼 내고

험한 계곡과 동굴과 해안 절벽 구석구석에 요새를 만들었다.

 

혼란과 부패의 시대인 194843일에 시작된 제주의 비극은

6.25 동란이 끝나고도 해를 넘기며 수많은 도민을 희생시켰다.

남노당의 앞잡이도 있었을 것이고 무고한 양민도 많았으리라.

43일에 발생된 사건에 연루되어 의심을 받던 사람들은

두 해 뒤에 6. 25가 터지자 북한군과의 합세를 우려한 잔인한 발상으로

갑자기 소집되어 깊은 숲이나 계곡으로 끌려가서 집단학살을 당했다.

  

  

이 아비규환의 시기에 많은 제주 사람들이 산중으로 피신했다.

경찰과 군대의 접근이 어려운 깊고 험한 숲과 계곡과 동굴에서

그들은 실낱같은 운명을 의지한 채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으리라.

6월이 되면 그 어두운 숲과 계곡에서 희고 작은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 꽃은 꽃잎이 실처럼 가늘고 희어서 실꽃풀이라고 불린다.

제주의 검은 계곡마다 피는 이 가냘픈 꽃을 보노라면

비극의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영혼들이 떠오른다.

계곡의 이곳저곳에 추모의 촛불처럼 피는 꽃,

실꽃풀은 억울한 혼령을 달래는 제주의 진혼곡인가...

 

2016.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