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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물 가까운 곳에서

벌레의 어미 노릇하는 문모초


  

문모초

Veronica peregrina L.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자라는 현삼과의 한두해살이풀. 높이 5~20cm.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줄기 밑에서 마주나고, 위에서는 어긋난다.

5~6월 개화. 꽃의 지름은 2~3mm로 흰 바탕에 다소 붉은빛이 돌며

깊게 4개로 갈라진다. 주로 중부 이남에 분포한다.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동네 유지들을 만났던 모양이다.

조잔한 사람들이 유세하는 것이 가소로웠던지 시 한 수를 남겼다.

 

日出猿生原(일출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猫過鼠盡死(묘과서진사)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黃昏蚊檐至(황혼문첨지) 황혼에는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夜出蚤碩士(야출조석사) 밤 되자 벼룩이 나와 가득하네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는 이 시로 원숭이, , 모기, 벼룩이 된다.

이 시에서 문(첨지는 모기 문()으로 슬쩍 비틀어지는데,

오늘날 실생활에서 이 모기 자가 들어간 말은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 야생화 중에 이 자가 들어간 문모초(蚊母草)라는 풀이 있다.

문모초는 개불알풀속의 식물로 그 모양이 선개불알풀과 아주 비슷하지만,

선개불알풀에 비해 약간 크고 털이 없으며 꽃이 흰색에 가깝다.

이 풀은 논이나 개울가에 살기 때문에 그냥 물개불알풀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모기 어미 풀이라는 뜻의 중국 이름을 쓰는 까닭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 문모초의 열매에는 벌레가 들어가 사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에서는 벌레풀(ムシクサ, 虫草)로 부르고 있는 식물이었다.

모기의 생태로 보나 실제 이 열매를 갈라서 그 속에 사는 벌레를 보면

전혀 모기가 아닌데 모기어미풀이라는 중국 이름은 의문으로 남는다.

 

(벌레집으로 변한 문모초의 열매(왼쪽)와 열매에서 나온 벌레(오른쪽) 이두한 님 사진) 


원래 문모초의 열매는 여느 개불알풀속 식물의 열매 모습과 비슷하나,

일단 벌레가 들어가 살게 되면 가운데가 부풀어서 구형이 된다.

정상적인 열매가 드물고 대부분의 열매가 벌레집으로 변하기 때문에

벌레풀이나 문모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이 벌레는 문모초에 기생하기 보다는 공생관계에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열매를 공짜로 벌레에게 빌려줄 까닭이 없다.

자연은 그렇게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관계를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벌레의 이름은 무엇이며 무엇을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2016.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