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모초
Veronica peregrina L.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자라는 현삼과의 한두해살이풀. 높이 5~20cm.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줄기 밑에서 마주나고, 위에서는 어긋난다.
5~6월 개화. 꽃의 지름은 2~3mm로 흰 바탕에 다소 붉은빛이 돌며
깊게 4개로 갈라진다. 주로 중부 이남에 분포한다.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동네 유지들을 만났던 모양이다.
조잔한 사람들이 유세하는 것이 가소로웠던지 시 한 수를 남겼다.
日出猿生原(일출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猫過鼠盡死(묘과서진사)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黃昏蚊檐至(황혼문첨지) 황혼에는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夜出蚤碩士(야출조석사) 밤 되자 벼룩이 나와 가득하네
원생원,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는 이 시로 원숭이, 쥐, 모기, 벼룩이 된다.
이 시에서 문(文) 첨지는 모기 문(蚊)으로 슬쩍 비틀어지는데,
오늘날 실생활에서 이 모기 ‘蚊’자가 들어간 말은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 야생화 중에 이 蚊자가 들어간 문모초(蚊母草)라는 풀이 있다.
문모초는 개불알풀속의 식물로 그 모양이 선개불알풀과 아주 비슷하지만,
선개불알풀에 비해 약간 크고 털이 없으며 꽃이 흰색에 가깝다.
이 풀은 논이나 개울가에 살기 때문에 그냥 ‘물개불알풀’로 부르면 될 것을
굳이 ‘모기 어미 풀’이라는 뜻의 중국 이름을 쓰는 까닭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 문모초의 열매에는 벌레가 들어가 사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에서는 벌레풀(ムシクサ, 虫草)로 부르고 있는 식물이었다.
모기의 생태로 보나 실제 이 열매를 갈라서 그 속에 사는 벌레를 보면
전혀 모기가 아닌데 ‘모기어미풀’이라는 중국 이름은 의문으로 남는다.
(벌레집으로 변한 문모초의 열매(왼쪽)와 열매에서 나온 벌레(오른쪽) 이두한 님 사진)
원래 문모초의 열매는 여느 개불알풀속 식물의 열매 모습과 비슷하나,
일단 벌레가 들어가 살게 되면 가운데가 부풀어서 구형이 된다.
정상적인 열매가 드물고 대부분의 열매가 벌레집으로 변하기 때문에
벌레풀이나 문모초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이 벌레는 문모초에 기생하기 보다는 공생관계에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열매를 공짜로 벌레에게 빌려줄 까닭이 없다.
자연은 그렇게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관계를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벌레의 이름은 무엇이며 무엇을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2016.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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