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3/물 가까운 곳에서

식물계의 저승사자 가시박


 



가시박

Sicyos angulatus L.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강 유역에서 흔히 자라는 박과의 한해살이풀.

길이 4~8m. 잎은 지름 10cm 정도의 오각형으로 연한 털이 밀생한다.

9~10월 개화. 지름 1cm 미만의 수꽃과 암꽃이 줄기 아래위로 달린다.

열매는 3~10개의 덩어리가 뭉친 것으로, 가시털로 덮여 있다.

 

 




 

가시박은 지나친 번식으로 생태교란식물로 낙인 찍혔으나,

그 오명과는 달리 꽃은 소박하고 얌전하게 생겼다.

줄기 마디마다 수꽃과 암꽃차례가 위 아래로 짝을 이루어 피는데,

암꽃들이 가시털이 난 열매덩이로 변해서 가시박이 된다. 

잎 한 장마다 가시박을 달아가면서 덩굴을 뻗어가는 모습은

반복의 리듬이 주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명희님 사진)

  

그러나 이 가시박이 창궐하는 군락을 보면 끔찍하다.

이 식물은 다른 식물이 숨 쉴 틈새를 주지 않고

제 아무리 키 큰 나무라도 기어이 타고 올라가 질식시킨다.

그야말로 식물계의 저승사자로 부를만한 괴물이다.

 

 씨앗 하나가 25미터까지 덩굴을 뻗으며 수만 개의 씨앗을 만들고

그 씨앗들은 땅속에서 7년 가까이 살아서 종자은행을 형성한다.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뿜으며 무수한 덩굴손으로

닥치는대로 감고 덮어 신라시대의 고분군 모양을 만들고야 만다.

  

  

가시박은 이렇게 왕성한 생명력과 병충해에 강한 특성 때문에

수박이나 오이 같은 작물들과 교배시키기 위해 모셔왔던 것이

언젠가 농장을 탈출해서 생태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지역 주민이나 단체에서 가시박 제거 행사도 더러 벌였지만

이들의 확산을 막는데는 거의 효과가 없었던 듯하다.

 

가시박은 주로 물과 인간의 영역 틈새를 노린다.

그곳은 물이 범람할 수 있어서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땅이다.

다른 식물도 그렇듯이 가시박의 유전자에도 깊은 지혜가 숨어있다.

사람들과 직접 이해를 다투지 않고 성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슬금슬금 그들의 왕국을 넓혀가고 있으니 말이다.

 

2016.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