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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산과 들 사이에서

기구한 여인의 초상 맥문동



 

맥문동

Liriope muscari (Decne.) L.H. Bailey


낮은 산지나 풀밭에서 자라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50cm.

짧고 굵은 뿌리줄기에서 잎이 모여 나와서 포기를 형성하고

흔히 뿌리 끝이 커져서 땅콩같이 되며 약재로 쓰인다.

5~8월 개화. 지름 5mm 정도의 자잘한 꽃들이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중부 이남에 분포하며 상록성 잎으로 겨울을 난다.

 




 

 

맥문동은 어릴 적에 동사리라고 불리던 예쁜 소녀였다.

동사리는 추운 겨울에도 잘 산다는 ()살이'라는 뜻으로, 

고려 때는 冬沙伊’(동사이)라는 이두식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동사리는 잎과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겨울을 견디는 것도 닮아서

보리 집안 즉,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맥문(麥門)에 시집을 가게 된다.

그 후로 보리 가문 에 시집간 동사리라 해서 맥문동'이 되었다.

현대 식물분류학의 관점으로 보자면 크게 잘못된 결혼이었다.

 

맥문동은 보리 집안에서 구박을 받아 보리와 같이 살지 못하고

들판의 언저리나 산자락의 그늘진 곳에서 외롭게 살았다.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예쁜 꽃과 열매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

도시의 화단에도 많이 심어져 요즘은 그럭저럭 형편이 좋아졌다.

  

  

나의 고모할머니는 이 맥문동의 내력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 분은 결혼한 지 7일 만에 신랑이 일제의 징용에 끌려갔고

해방 후에도 영 소식이 끊겨 70년을 기다리다가 삶을 마치셨다.

이 할머니가 백씨 가문에 시집을 갔기 때문에서 원래 이름 대신

평생을 백문네로 살았으니 맥문동의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세기에 이 나라가 일제침략과 6.25의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이처럼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이 얼마였는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맥문동의 속명 Liriope도 비탄에 빠진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릴리오페는 미소년 나르시서스의 어머니로,

물에 빠져 죽은 자식 생각에 평생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야만 했다.

 

맥문동의 뿌리는 예로부터 심장을 보하고 폐를 시원하게 하며

정신을 진정시키고 맥의 기운을 안정시키는 한약재로 쓰여 왔다.

기구한 여인의 초상을 닮은 맥문동이 이렇게 평생 가슴앓이 하는

여인들을 보살피는 약효가 있는 건 또 무슨 기묘한 조화인가.

 

2016. 9. 29.






      

개맥문동

Liriope spicata (Thunb.) Lour.


산과 들의 나무그늘에서 자란다. 높이 15cm 정도.

뿌리줄기가 옆으로 길게 뻗으면서 번식한다.

5~7월 개화. 지름 4mm 정도의 꽃이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맥문동에 비해 잎이 좁고, 꽃이 흰색에 가까운 보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