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가래꽃
Lobelia chinensis Lour.
냇가, 논둑의 습한 곳에 자라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15cm.
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서 뿌리가 나오고, 잎은 2줄로 배열된다.
6~10월 개화. 폭 1cm 정도의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나온다.
나는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거의 유년시절을 보내야했다.
농촌에서는 아이를 지켜 볼 곳이 그런 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풀꽃과 벌레, 돌멩이와 흙을 가지고 하루 종일 놀았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던 수염가래꽃도 재미있는 놀잇감이었다.
이 꽃을 따서 수염처럼 붙이고 어른 흉내를 내기도 했는데
코흘리개 아이의 코밑에 이 작은 꽃은 오래도록 잘 붙어 있었다.
이 꽃은 모내기 전에 써레질을 할 무렵에 논두렁에 피었다.
농부들은 봄이 오면 논흙을 쟁기로 갈아 흙에 숨을 불어넣고
논에 물을 대어 한 달 이상 흙을 녹이듯이 부드럽게 한 다음
써레로 흙을 반죽처럼 만들면서 논바닥을 고르고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 전에 논흙을 고르게 하는 써레. 사진 출처 네이버 백과)
수염가래꽃은 가래의 모양과는 거리가 멀고 써레와 비슷하다.
가래는 긴 자루가 달린 큰 삽으로, 삽날 옆에 밧줄을 매어
여러 사람이 함께 흙을 퍼 올리거나 도랑을 파는 농기구였다.
논에서 흔히 자라는 이 가래 모양의 물풀 이름도 가래이다.
수염가래꽃의 이름은 이런 가래와 관련이 없는 것 같고
‘수염갈래’가 변음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수염가래꽃의 조상은 작은 도라지꽃과 같은 통꽃이었는데
꽃을 크게 보이게 하려고 통꽃이 갈라져서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수염가래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장의 꽃잎으로 되어있다.
윗 꽃잎은 깊게 갈라져 오른쪽 왼쪽으로 뻗친 콧수염 모양이 되고
아래쪽 꽃잎은 세 갈래로 갈라져서 가운데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수염가래꽃은 암술이 먼저 성숙하는 암꽃으로 피었다가
수분이 되면 암술이 시들고 수술이 자라 수꽃이 되므로
무리지어 있는 꽃들에서는 두 가지의 꽃 모양이 보인다.
같은 초롱꽃과인 숫잔대의 꽃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수염가래꽃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물 위에 비친 초로의 사내를 만난다.
한 줄기 바람이 물 위를 스치며 주름진 얼굴을 뭉개어
50년 전 코흘리개 아이의 모습을 어렴풋 그려놓는다.
201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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