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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3/물 가까운 곳에서

께묵의 바른 이름은 깨묵이다


  

께묵

Hololeion maximowiczii Kitam.


들의 습지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50~100cm.

줄기는 곧게 서고 위쪽에서 갈라지며 털이 없다. 9- 10월 개화.

가지 끝에 편평꽃차례로 피며 모두 혀꽃이다. 전국에 드물게 분포한다.

 




  

조선의 관리들은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쥐어짜는데 오직 한국인들만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습니다.’


1895년에 조선에 파견된 미국인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이

이듬해 320일에 그의 아버지에게 보냈던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포악한 관리가 백성을 쥐어짜는 폐단은 역사에 늘 있어왔지만,

외국인 선교사가 이를 특별히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망해가는 조선 땅에서는 가렴주구의 정도가 몹시 심했던 모양이다.



쥐어짠다는 표현에서 옛날에 기름을 짜내던 기름틀이 떠올랐다.

깨를 삼베보자기에 넣어 기름틀에 넣고 무거운 돌을 얹어 놓으면

모래알 같은 곡식에서 기름이 졸졸 나오는 것이 참 신기했었다.

기름을 다 짜내고 보자기에 남은 찌꺼기를 깻묵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버리기 아까워 밥에 비벼먹기도 했었다.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께묵이라고 불리는 식물이 있다.

'께묵'이라는 명사는 도무지 의미가 통하지 않아서

이 식물을 볼 때마다 깨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준어는 깻묵이지만 사이을 빼더라도 그리 틀린 건 아니다.


(조선식물향명집의 색인(왼쪽)에는 깨묵으로 본문(오른쪽)에는 께묵으로 인쇄되어 있다.)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1937년에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에서

이미 그 혼돈의 단초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색인에는 깨묵으로 해놓고 본문은 께묵으로 인쇄해놓은 것이다.

게다가 같은 해에 <조선식물향명집>의 공동저자 중의 한 사람인 이덕봉 선생이

조선어학회 회지인 <한글>(41)조선산식물의 조선명고(朝鮮産植物朝鮮名考)'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도 께묵으로 인쇄되어 있다.

그 시대에는 한글 맞춤법이 정리되지 않아서 를 혼용했는지

편집이나 인쇄 과정의 단순한 실수인지는 지금 알 길이 없다.

오늘날 국명은 께묵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이영노(1920~2008) 박사 같은 분은

굳이 깨묵이라는 이름을 고집했던 사실도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께묵은 물이 흥건하게 고이는 습지에 자라는데다가 꽃봉오리가 가무잡잡해서

기름틀에서 흘러내린 기름과 가뭇가뭇한 찌꺼기로 남은 깨묵이 연상되고,

쥐어짜여 기름은 다 빠지고 쭉정이만 남은 백성들의 고통도 느껴지는 식물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께묵깨묵이 제대로 된 이름 같다.


2016.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