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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언제나 어디서나

시지푸스의 운명을 닮은 개쑥갓

 

 

개쑥갓

Senecio vulgaris L.

 

들이나 밭에서 자라는 국화과의 한두해살이풀. 높이 10~40cm.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며 남부지방에서는 겨울에도 꽃이 핀다.

약간 독성이 있으나 삶아서 묵나물로 먹을 수 있고, 약재로 쓴다.

개항 무렵에 유럽에서 들어온 외래식물로 한국 전역에 분포한다.

[이명] 들쑥갓, 구주천리광(歐州千里光, 한약재 명)

 

 

 

 

 

 

 

시지푸스(Sisyphus)는 신을 속이고 죽음의 세계로부터 도망쳤다.

그리고 그를 쫓아온 저승사자를 감금해 놓고는 장수를 누렸다.

그 전에도 제우스 신에게 괘씸한 짓을 한 적이 있었던 그는

높은 산꼭대기로 둥근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다.

바위는 산꼭대기에서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어서

오늘도 시지푸스는 바위를 밀어올리고 있을 것이다.

 

시지푸스의 운명을 닮은 들꽃이 있다.

사계절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개쑥갓이 바로 그 꽃이다.

우리나라에 피는 수천 가지 들꽃 중에서

이처럼 일 년 내내 피는 꽃은 개쑥갓 뿐일 것이다.

 

꽃을 피우는 일은 출산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연중 출산을 하다시피 하는 식물이라서 그럴까,

생리통, 산통, 요통 등에 약효가 있다하니 재미있는 일이다.

 

(12월에도 꽃을 피우는 개쑥갓. 전남 무안)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결실을 하고나서 죽어가는 것은

생명을 모두 쏟아 부은 까닭이리라.

끝없이 꽃을 피워내야 하는 일은 형벌이다.

 

개쑥갓은 일 년 내내 꽃을 피워내기 때문에

이른 봄에도 백발처럼 하얀 갓털(冠毛)을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봄노인’(old man in the spring)이라고도 부른다.

시지푸스의 머리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백발이 되었으리라.

 

A. 카뮈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만 하는 형벌을

그저 부조리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 행복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일은 고통일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크나큰 축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풀을 영어로 'groundsel, 땅의 축복'이라고 하는가보다.

하얀 솜털을 한가로이 날려 보내는 개쑥갓을 보면

분명 그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2011. 1. 5. 꽃 이야기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