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2/습지와 냇가에서

조물주의 흡족한 걸작 물매화

 

 

물매화

Parnassia palustris L.

 

산기슭의 습한 곳에 자라는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cm 가량.

8~10월 개화. 수술은 다섯 개이며 외곽에 다섯 개의 헛수술이

왕관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각각의 헛수술은 12~22갈래로 갈라진다.

이 갈래가 8개 이하인 것을 애기물매화로 분류한다.

한국 및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한다. [이명] 물매화풀, 풀매화

 

 

 

 

 

 

영국의 진화학자인 잭 홀데인(J.B.S. Haldane)교수는

“조물주께서는 딱정벌레에 대해 지나친 호감을 가졌던 분”

이라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딱정벌레가 35만여 종인데

이는 곤충 종류의 거의 절반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하느님이 진흙으로 딱정벌레 한 마리를 빚으신 다음,

그 벌레의 귀여움에 도취되어 딱정벌레 만들기를 멈추지 못하는

하느님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물매화를 보면 그의 상상은 단순한 농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홀데인의 상상대로라면 하느님은 물매화 종류도

스스로 빚어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수십만 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상에 물매화속의 꽃은 10여 종 밖에 없다.

 

하느님은 물매화의 아름다움에 흡족하셔서 몇 가지로 그쳤고

딱정벌레는 뭔가 자꾸만 아쉬움이 있어서 수십만 종이나

정신없이 계속 만드셨던 것이 아닐까싶다.

 

 

해마다 물매화가 필 때면 들꽃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자의 행렬처럼 이 꽃이 피는 곳을 찾는다.

물매화는 연한 주름 무늬가 있는 옥양목 같은 꽃잎 위에

보석 왕관 같은 꽃술에서 조형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왕관처럼 보이는 꽃술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헛수술이고,

진짜 수술은 다섯 개로, 보통 연노랑색 꽃밥을 달고 있다.

드물게 빨간 꽃밥을 단 물매화는 흔히 ‘립스틱물매화’로 불리면서

야생화를 즐겨 찾는 이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이 ‘립스틱물매화’는 해마다 발견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이 진화의 과정인지는 긴 세월 동안 관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물매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이 꽃이

조물주도 스스로 흡족해 할 만한 걸작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딱정벌레 만들기에 대한 홀데인의 유쾌한 상상을

이 물매화를 통하여 뒤집어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재미있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자의 여유를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2010. 11. 6. 꽃 이야기 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