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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아지랭이피는 들녁

내 손자는 꼬부랑할미를 알까?

 

할미꽃

Pulsatilla koreana (Yabe ex Nakai) Nakai ex Nakai

 

산이나 들의 양지에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주로 석회암 지대나 석회를 쓴 무덤 주변에 흔히 난다.

높이 30cm 가량. 전체에 희고 긴 털이 밀생한다.

4~5월 개화. 뿌리를 약용한다.

한국, 중국 동북 지방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노고초, 가는할미꽃

 

 

 

 

 

 

요즈음 아이들은 '꼬부랑할미'를 이해할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나의 손자가 ‘꼬부랑할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옛날의 삶에 대하여 꽤나 긴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다.

 

허리를 굽히고 쉬지 않고 일을 하면 허리가 그대로 굳어서

할머니 나이쯤 되면 꼬부랑할미가 된다고 하면 알아들을까?

그러면 '왜 쉬지 않고 일을 했냐'고 물을 것이 뻔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옛 여인들이 감당했던 노동을 요즘과 비교하면

도대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어림짐작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옛 사람들이 옷을 장만하는 일을 예를 들어 계산해 보았다.

봄에 삼씨를 뿌리고 여름에 베어 일일이 잎을 떨어낸 다음

삼단을 큰 구덩이에 묻어놓고 하루 종일 쪄서 물에 담근다.

그 껍질을 벗겨내서 거친 겉껍질은 긁어내고 잘 말려서

잘게 찢어서 겨우내 물레질로 실을 꼬아 씨실과 날실을 감는다.

이듬해 봄부터 여름까지 서너 달 동안 베틀에 앉아 베를 짠다.

베를 다 짜면 마당에 말뚝을 박아 팽팽히 당겨놓고 풀질을 하고

겨우내 옷을 지어, 씨를 뿌린지 2년 만에 베옷을 입을 수 있었다.

 

요즈음 백화점에 가서 좋은 옷 한 벌 사는데 잠깐이면 되는데

예전에는 베옷 한 벌 만드는데 천여 시간이나 일을 해야 했다.

그런 원시적 노동이 어디 옷을 만드는 일에만 그러했겠는가.

식생활이며 주거생활의 모든 일들을 거의 자급자족했으니

옛 여인들은 평생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결국 허리가 꼬부라진 채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삶에 주어진 마지막 호칭이 ‘꼬부랑할미’였다. 

 

꼬부랑할미를 그대로 빼닮은 할미꽃은

하얀 솜털로 덮인 싹이 나서 곧 허리가 꼬부라지고,

어느 날 붉은 꽃잎이 떨어지면 백발을 휘날리는 할미가 된다.

 

 

나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는 정말 ‘꼬부랑할미’여서

할미꽃을 만나면 그냥 편안하고 아득하고 정답기만 했다.

그러나 다음 세대들은 꽤나 긴 배경이 전주곡으로 나와야

‘할미꽃’이 왜 할미꽃이 되었는지 겨우 받아들일 듯싶다. 

 

내 어릴 적에는 이집 저집 꼬부랑 할매들도 많았는데

요즘 세상같으면 모두 청바지 입고 다닐 청춘이었다.

할미꽃 앞에 서면 그 옛날 정 많은 할매들 모습이 생각난다.

 내 손자(아직 없는)의 할미는 도무지 할미꽃과 닮지 않았다.

 

 

2013. 3. 20. 꽃 이야기 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