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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아지랭이피는 들녁

고달픈 백성의 이름, 뽀리뱅이

 

뽀리뱅이

Youngia japonica (L.) DC.

 

길가나 밭에 나는 국화과의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 높이 15~100cm.

전체에 가는 털이 있다. 뿌리에서 잎이 뭉쳐나고, 줄기에서 나는 잎은

4 장 이하이며,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4~6월 개화. 두상화의 지름 7~8mm.

어린잎을 식용한다. 한국(중부 이남),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보리뱅이, 박조가리나물, 박주가리나물

 

 

 

 

 

뽀리뱅이는 뭔가 사연이 있음직한 풀이름이다.

보릿고개를 넘겨주던 구황식물이어서

보리뱅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봄철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었고 잘 말려서 묵나물로도 먹었다.

 

 

뽀리뱅이는 냉이 잎과 비슷한 모양으로 겨울을 나다가,

이른 봄에 냉이인줄 알고 덩달아 캐지기도 하는 풀이다.

냉이는 십자화과이고 뽀리뱅이는 국화과의 식물이지만

겨울을 나기에 유리해서 잎 모양이 비슷해진 듯하다.

사실 뽀리뱅이는 냉이처럼 맛도 향기도 별로 없는 풀이지만,

덩치가 크고, 냉이를 닮은 죄로 억울하게 딸려가는 면도 없지 않다.

 

뽀리뱅이는 땅바닥 가까이 도톰한 잎사귀가 풍성하게 자리 잡고

굵은 줄기를 올린 다음에 노랗고 자잘한 꽃들을 피운다.

그래서 이 꽃을 보노라면 튼실한 구조물을 보는듯한 안정감과

근본이 튼튼하지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미덕이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말에 ‘뱅이’가 들어가서 좋은 의미로 쓰인 말이 없다.

주정뱅이, 게으름뱅이, 거렁뱅이 등, 아무런 요량도 없이

하루하루 막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붙은 호칭이다.

어찌 보면 주정도 병(病)이고 게으름도 병이고 동냥질도 병이다.

아무래도 '뱅이'라는 접미사는 '병이'에서 왔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뽀리뱅이는 왜 ‘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을까?

넉넉한 몸체에 비해서 너무 쪼잔하게 작은 꽃을 피워서

소심함도 병이라는 뜻에서 그리 불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순박한 백성들은 그 잘난 양반들이나 토색질 하는 관리나

가뭄이며 홍수와 같은 불가항력의 재난이나 원인 모를 질병이나

산에 사는 맹수들이나 모든 것이 두려움과 조심의 대상이었다.

소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본 것은 보릿고개를 어찌어찌 넘긴다고 해도

목숨만 붙어 있을 뿐, 나아질 것이 없었던 백성들의 자괴감이랄까,

이 풀이나 뜯어먹고 어떻게 배겨보자 하는 막연한 희망에서

'보리뱅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 이름의 연원이야 제대로 알 길이 없지만,

뽀리뱅이 피는 봄 들녘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노라면

조상들의 고달팠던 삶과 아련한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2013. 2. 24.

꽃 이야기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