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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끝내 알아내지 못한 흑삼릉의 정체

 

흑삼릉(黑三稜)

Sparganium erectum L.

 

연못이나 도랑에 나는 흑삼릉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70~100cm.

식물체 전체가 해면질. 포복지가 옆으로 뻗고 줄기는 곧게 선다.

6~8월 개화. 꽃줄기의 높이는 30~50cm.

한국(북부), 일본,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호흑삼능, 흑삼능

 

 

 

 

 

'흑삼릉'은 비밀공작원의 암호명 같은 식물 이름이다. 

만나기가 쉽지 않은 식물로 멸종위기식물 명단에도 올라있다.

이 식물의 이름은 중국명과 같고, 일본명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던 다른 이름도 특이한 것이 없고,

학명이나 영어명을 찾아보아도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생긴 것은 참 별난데 뒷조사를 해보니 나온 것이 없었다.

 

흑삼릉은 암수한그루 식물로 암꽃이 밑에, 수꽃이 위에 달린다.

암꽃은 꽃줄기 밑에서부터 파대가리를 닮은 두상화 너댓 개를 피우고,

수꽃은 암꽃에 이어서 면봉 같은 두상화 예닐곱 개를 올라가며 피운다.

암꽃은 철퇴처럼 뿔이 박힌 열매가 되고, 수꽃은 타버린 재처럼 사라진다.

 

 

흑삼릉은 이름에 삼(三)자가 들어갈 만큼 숫자 3과 관련이 많다.

암꽃과 수꽃의 화피가 각각 3개, 수술이 3개, 씨앗이 삼각뿔 모양이다.

이 씨앗들이 알알이 박힌 철퇴모양의 열매가 익으면

거무스레해져서 ‘흑삼릉’이라는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한약재명인 듯도 하지만 그를 뒷받침할만한 자료는 없고,

단지 다른 야생초들처럼 몇몇 효능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굳이 이 식물의 특별한 점을 말하라면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체가 해면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속이 스펀지처럼 허술하고 가벼워서

어떤 조건에서는 쉽게 손상되고, 물에 잘 뜬다는 말이다.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알아낸 것이 고작 이 정도였다.

 

 

역시 비밀공작원 같은 이름값을 하는 식물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자신을 철저히 숨겨야하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그런 특수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연한 일로

누군가를 위해서 지켜줘야 할 비밀이 생길 수 있다.

 흑삼릉이 어떤 식물인지 별로 알아낸 것은 없지만,

그에게서 훨씬 값진 침묵을 배웠다.

 

 

2013. 3. 10. 꽃 이야기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