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아수라지옥에 피는 모성, 가시연꽃

 

가시연꽃

Euryale ferox Salisb.

 

1~ 2m 깊이의 못에 사는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전체에 가시가 있고 잎은 지름 120㎝까지 자란다.

7, 8월 개화. 종자는 감실(芡實)이라고 하여, 강장약재로 사용해 왔으며,

첫해에 20%, 다음해에 50%가 발아하며, 3년 뒤부터는 많이 발아한다.

아시아 특산의 1속 1종 희귀식물.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등지에 분포.

[이명] 가시연, 가시련, 개연, 칠남성

 

 

 

 

 

가시연꽃은 볼수록 참담한 느낌이 드는 꽃이다.

창 같이 생긴 꽃대가 자신의 잎을 불쑥 뚫고 나온 모양이,

제 어미의 살을 찢고 나온 괴물처럼 섬뜩하다.

악어의 등껍질 같은 잎에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촘촘히 솟아있고

그 잎맥은 무시무시한 육식공룡의 눈에 뻗친 핏줄처럼 보인다. 

 

잎은 구겨진 휴지뭉치처럼 물 위로 올라와 수면에서 주름을 펴다가

급기야 서로 부딪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아수라장을 만들어 간다.

수면이라는 2차원의 한정된 공간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처참한 모습은 3차원 공간에서 넉넉하고 풍성하게 자라는

보통 연꽃의 모습과는 완연하게 대비가 되는 모습이다.

 

가시연꽃에 대한 이런 편견이 어느 날 한순간에 달라졌다.

어느 해 가을, 저수지 수면에서 썩어가는 가시연꽃의 잎을 보았는데,

그 넓적한 잎마다 토끼똥 같은 씨앗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잎 위에 씨앗을 널어놓으려고 꽃대가 잎을 찢고 나온 것이고,

새들이 씨앗을 먹지 못하도록 잎에다 가시를 세우고 있는 듯했다.

 

 

밤송이처럼 생긴 가시연꽃의 열매 속에는 백 여 개의 씨앗이 들어있다.

가시연꽃의 어미는 이 씨앗들이 모두 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면

그 이듬해에 자식들끼리 다툴 것을 염려해서 씨앗을 물 위에 띄워 놓고,

어떤 적절한 조건이 될 때마다 여기 저기 씨앗을 가라앉히는 듯하다.

 

씨앗들은 물위에 떠 있다가 우무질(jelly)의 껍질이 녹으면 바로 가라앉고,

어떤 것은 잎 위에서 까맣게 익어서 잎이 썩으면 가라앉는 듯했다.

가라앉은 씨앗은 몇 년에 걸쳐서 매우 불규칙하게 싹을 틔우고,

그냥 보관한 씨앗은 500년이 지나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가시연꽃은 백년에 한 번 꽃 피운다고 할 정도로 꽃을 보기 어렵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가시연꽃이 꽃 피우는 모습을 찾아다녀보니,

무슨 까닭인지 해마다 꽃을 피우지는 않는 듯하였다.

종자를 지키기 위하여 개화와 발아를 불규칙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즉, ‘내 새끼를 먹으려고 해마다 기다리다가는 굶어죽는다’는 메시지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려고 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시투성이 괴물이 되어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는 모성애를 가시연꽃에게서 보았다.

그러한 모성애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나의 느낌이었을 뿐,

오랜 동안 가시연꽃을 찾아다니며 제대로 알아낸 것은 거의 없다.

가시연꽃은 내게 여전히 신비와 궁금증의 주인공이다. 

 

2007. 7.  꽃 이야기 167

 

 

 

(왼쪽 사진으로부터) 가시연꽃의 결실직후 꽃 속 모습,  물에 떠있는 씨앗,   잎 위에 얹혀 있는 씨앗,   잎이 썩으며 가라앉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