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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습지와 냇가에서

옛날의 도랑에서 만났던 구와말

 

구와말

Limnophila sessiliflora (Vahl) Blume

 

연못이나 논에 나는 현삼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길이 10~30cm.

전체에 털이 있고 뿌리줄기가 진흙 속에서 옆으로 뻗는다.

8~10월 개화. 꽃자루가 거의 없다.

한국(중부 이남), 아시아의 열대와 온대에 분포한다.

* 민구와말은 털이 없고 꽃자루가 있다.

[이명] 논말

 

 

 

 

생각할수록 수수께끼 같은 일이 있다.

'백 명이 농사 지었는데 열 명 먹기에도 모자랐고,

열 명이 일해서 백 명이 먹고도 남는 것'이었다.

 

60년대에는 우리나라 사람 7할이 논, 밭에서 일했는데도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배불리 먹기가 어려웠다.

요즈음 벼농사 농가는 그때에 비해 십 분의 일이 되지 않고

인구는 두 배 가까이 늘었는데도 쌀이 남아돌아간다고 한다. 

 

평생 벼농사를 지어온 분들로부터 그 수수께끼의 답을 얻었다.

품종개량과 관개시설, 비료, 그리고 농약 덕분에 예전에 비해서

똑 같은 논에서 쌀이 여덟 배 정도 더 나온다고 들었다.

 

게다가 옛날에 수십 사람이 하루 종일 하던 모내기나 

추수를 하던 일은 지금은 한 사람이 한 시간에 해치운다.

이 계산의 결과, 1인당 생산량이 백 배 이상 증가했다는 답이 나온다.

그렇게 되기까지 농약으로 일을 줄이고, 소 대신 기계를 부릴 수 있도록

논을 반듯하게 만들고 논둑길을 포장하고 콘크리트로 물길을 만들었다. 

 

 

사람이 배불리 먹는 세상이 오면서 논과 벼와 더불어 살던

크고 작은 새와 짐승, 고기와 곤충들이 몰살하다시피 했다.

그들과 나누어 먹던 모든 것을 인간이 독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종의 식물들도 덩달아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해 가을 생각 없이 들른 섬진강가의 외진 골짜기에서

수십 년 전에 눈에 익었던 구불구불한 계단식 논을 만났다.

그 논둑과 도랑에는 애기봄맞이, 외풀, 여우구슬, 구와말 등,

요즈음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여러 가지 풀들이 살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 있는 도깨비의 보물창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구와말이 제일 반가웠다.

구와말은 국화 잎 모양을 닮았다는 뜻의 일본 이름

 '기꾸모(きくも)'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나는 우리말 이름 '논말'을 훨씬 좋아 한다.

구와말은 논물이 채 마르지 않은 축축한 진흙 도랑을 따라

예쁘고 작은 분홍색 꽃을 피우고 나를 반겨 주었었다.

꽃의 크기만큼 수분 곤충도 작을 터이니 농약의 첫 제물이 되기 쉽다.

그래서 구와말은 농약을 쓰지 않는 논에서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구와말을 보러 그곳을 찾던 즐거움은

몇 년 뒤에 트랙터 길이 생기면서 작은 도랑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작은 풀꽃들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고

우리는 그들이 주던 위로와 행복을 잃은 줄도 모르고 산다.

 

 

2013. 2. 17. 꽃 이야기 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