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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바닷가에 피는 꽃

띠, 처녀지에 나부끼는 천사의 깃털

 

Imperata cylindrica var. koenigii (Retz.) Pilg.

 

산기슭과 강가에 흔히 자라는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해안사구나 간척지에 대군락을 이룬다. 높이 30~120cm.

5~6월 개화. 지붕을 엮거나 수공예품의 재료로 쓰였다.

한국(전역) 및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이명] 띄, 삘기, 삐비

 

 

 

시화호의 남쪽에는 끝이 아득한 평원이 있다.

 원래 갯벌이었던 곳을 방조제로 막아서 생긴 땅인데,

천만 평이 넘는 땅이 생기자 띠가 가장 먼저 싹을 틔웠다. 

 

바다 생물들이 살던 갯벌을 말려놓은 땅은

소금기가 허옇게 드러난 모래 토질의 처녀지다.

어떤 풀도 살기가 어려운 그 땅에 띠가 살고 있다.

 

그곳은 이 나라에서 대자연이라고 부를 만한 유일한 곳이다.

띠 이삭이 피는 유월, 그곳에는 은물결이 일렁인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어떤 모습으로 지나가는지 보인다.

천사 날개의 깃털인양 부드러운 하얀 이삭들이 물결치며

태초에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띠처럼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는 식물들은 무리지어 산다.

'띠'는 ‘떼'지어 살아서 '띠'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은 해보지만, 

나는 ‘삘기’라는 이름에 훨씬 더 익숙하다.

계절이 무르익어 띠의 이삭 줄기 끝에 통통하게 살이 오르면

촉촉하고 달짝지근한 삘기를 빼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맛은 지금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 비하면

달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밋밋한 맛이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자연이 주는 당분을 섭취했다.

봄에는 찔레순, 뱀딸기, 소나무순에 단맛이 올랐다.

그 맛은 추억과 버무러져서 더 달콤하게 남아있다.

 

요즘은 웬만한 시골 아이들조차 어린이집, 학원, PC방...

이런 곳에서 비싼 비용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부모들은 그 비용을 대느라 제 아이는 남의 손에 맡기고

삶의 본질과 거리가 먼 일에 시간과 노동을 바치고 있다.

 

 

나의 유년은 산과 냇가, 동네 골목이 놀이터였고

돈이 없어도 나무와 풀들이 맛있는 것을 주었다.

요즘 세태를 보면 내가 천국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천사의 깃털 같은 띠가 물결치는 그 처녀의 땅,

끝없는 초원 가운데에서 가끔 전라(全裸)의 여인을 만났었다.

그곳에 태초의 이브로 돌아가고 싶은 여심이 있었다. 

 

2013. 1. 29. 꽃이야기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