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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한여름의 숲과 들

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한 타래난초

 

 

타래난초

Spiranthes sinensis (Pers.) Ames

 

산야의 풀밭에 나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0∼40cm.

뿌리는 짧고, 잎은 밑 부분에 뭉쳐나며, 줄기는 곧게 선다.

6∼8월 개화. 꽃은 분홍색으로 짙거나 연한 변이가 크다.

한국 및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이명] 타래란

 

 

 

 

타래난초는 꽃이 타래처럼 꼬이면서 피는 난초다.

한때 ‘이~상하게 생겼네, OO스크류~바’하고 선전하던

얼음과자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꽃이다.

 

이 난초는 우리나라에 나는 백여 가지의 난초 중에서

가장 흔한 난초로서 그늘을 좋아하는 보통 난초와는 달리

묘지처럼 양지바른 풀밭에 여느 잡초와 다름없이 산다.

너무 흔해서 잡초와 함께 예초기에 무더기로 잘려나가는 신세다.

 

잡초처럼 흔하다는 것은 식물에게는 성공한 삶이다.

타래난초가 험한 야생에서 그토록 번성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그러나 강인한 씨앗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타래난초는 밥알 크기의 꽃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만들어낸다.

말이 씨앗이지 먼지나 다름이 없다.

 

대체로 식물의 씨앗에는 싹을 틔울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분이 있지만

타래난초는 비정하게도 자식을 무일푼으로 험한 세상에 내보낸다.

그 씨앗은 씨앗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하는 편이 차라리 맞다.

 

 

이 씨앗은 땅에 떨어지면 ‘난균’이라는 곰팡이 무리를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에 들어온 균사로부터 영양분을 빼앗아 싹을 틔우고,

싹이 자라면서 이 난균까지 완전히 분해하고 흡수해서 양분으로 삼는다.

이 먼지 같은 씨앗은 난균과의 거래에서 자칫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는

위험과 고비를 넘어서 타래난초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나와 나의 형제자매들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벌인 일마다 잘못되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나와 동생 넷은 빈손으로 험한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에 우리 남매들은 저마다의 영역에서

그 나름의 성취를 했고 옛말하며 살고 있다.

 

명절에 자식들이 모일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오늘날 모두 이렇게 잘 된 것은,

어릴 적 고생을 시킨 애비 덕인 줄 알거라’

 

 

2012. 12. 25.

꽃이야기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