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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한여름의 숲과 들

유년의 추억으로 가는 이정표, 짚신나물

 

 짚신나물

Agrimonia pilosa Ledebour

 

들이나 길가에 나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150cm.

6~8월 개화. 어린잎은 식용하고 전초는 약용한다.

한국, 동북아시아, 시베리아, 동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등골짚신나물, 큰골짚신나물, 낭아(狼牙), 용아초(龍牙草) 등.

 

 

 

 

 

들길을 가다가 문득 만나는 짚신나물은

아득한 유년의 추억으로 가는 이정표다.

나는 볏짚으로 짚신을 삼고,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는

어른들의 일을 거들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무렵 어른들은 짚신을 신고 농사일을 하다가,

마을 밖으로 나들이 갈 때만 하얀 고무신을 꺼내 신었다.

 

볏짚은 짚신을 삼는데 쓰일 뿐 아니라

농촌 생활 어느 곳에도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볏짚으로 지붕을 덮고  방바닥에 까는 자리를 짰다.

여름철엔 마당에서 볏짚 멍석에 둘러앉이 밥을 먹었다.

멍석은 곡식을 널기도 하고 식구들이 일하는 자리기도 했다.

볏짚으로 거적과 가마니를 짜서 온갖 양식을 갈무리했다.

닭은 볏짚으로 엮은 둥지에서 알을 낳았다.

외양간의 소들은 볏짚을 썰어서 끓인 쇠죽을 먹고 겨울을 났다.

 

그 무렵에는 종이가 너무 귀해서

내 나이 열 살 무렵에야 신문지로 뒤를 닦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통시(변소) 한 구석에 볏짚을 한 단 놓아두고

지푸라기 몇 가닥을 뽑아 대여섯 번을 겹쳐서 뒤를 닦았다.

수 천 년을 벼농사문명이 내 어릴 적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가끔 재미삼아 어른들 짚신을 신고 다녔는데,

한 번은 짚신 한 짝을 뒷간에 빠뜨려 버렸다.

헐거운 어른 짚신을 신고 통나무 발판이 건들거리는

뒷간에 갔으니 언젠가 한 번은 일어나고야 말 사고였다.

어린 마음에 크게 혼날 줄 알고

볏짚을 쌓아둔 헛간 구석으로 숨었다.

그 무렵 헛간은 나의 포근한 은신처였다.

 

 

짚신나물의 살짝 굽은 노란 꽃차례는 짚신을 닮은 듯도 하다.

어떤 책에서는 그 잎이 짚신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 이름이 아니라면 이 식물에서 짚신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지만,

나는 ‘짚신’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추억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그 종착역엔 언제나 포근한 헛간의 볏짚더미가 기다리고 있다.

 

머지않아 볏짚에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묘비처럼 

짚신나물은 무심코 피고 지리라. 

 

2011. 10. 28. 꽃이야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