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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그 곳에만 피는 꽃

바람결 생명의 향기, 풍란

 

풍란

Neofinetia falcata (Thunb.) Hu

 

남해안 지역의 바위나 나무에 붙어사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주변습도가 높고 햇볕이 잘 들어오거나 반그늘에 자란다.

높이 약 10㎝. 잎의 길이 5~10㎝, 폭이 약 0.7㎝ 정도다.

7~8월 개화. 멸종 위기 1급.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꼬리난초

 

 

 

 

 

 

풍란은 남해안의 절벽이나 나무에 뿌리를 붙이고 산다.

남해안의 바닷가 마을에는 옛날에 어부들이 뱃길을 잃었을 때

바람결에 묻어오는 풍란의 향기로 뱃길을 잡았고,

조난을 당했을 때에도 이 향기를 따라 가까운 섬으로 가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남해의 무인도를 탐사하려면

풍란이 너무 우거져서 낫으로 쳐내가면서 섬을 올랐다고 한다.

그 정도의 군락이 있었기에 그 향기가 바다 멀리까지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 상태에서 풍란을 보기가 아주 어렵다.

 

풍란의 다른 이름은 조란(弔蘭)이다.

풍란 꽃에는 긴 꿀주머니가 아래로 달려 있어서

무리지어 핀 꽃들은 상복에 너풀거리는 베 조각처럼 보인다.

그것은 언젠가 춥고 험난한 바다에서 생명을 잃은

불쌍한 어부들을 위한 조화(弔花)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해 어느 섬의 풍란. 로프를 타고 한 손으로 찍은 사진)

 

라인강의 로렐라이에는 고마운 풍란 대신 고약한 요정이 살고 있다.

배가 이곳을 지날 때 요정의 노래에 홀려 정신을 잃고

절벽에 부딪혀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전설로 잘 알려진 곳이다.

유령이나 요정, 귀신들 같은 인간의 혼령 중에 십중팔구는 로렐라이의 요정처럼 인간을 해코지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천사인 양 보이려고 하면서도

그 원초적 영혼은 경쟁과 적대관계에 있는 듯하다.

카인의 질투가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같은 종끼리의 생존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과학적 명제를 상기해봐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것들, 꽃이나 새나 짐승들은

풍란처럼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한 자연에 대하여 인간은 참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수천수만 년을 자연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은 인간이

오늘날에 와서는 그 욕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풍란을 사라지게 한 분별 없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것을 다시 심는 뜻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느 섬에는 풍란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생명의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는 그 날을 꿈꾼다.

 

 

2012. 12. 3. 꽃이야기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