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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언제나 어디서나

菜根譚의 주인공 명아주

명아주

Chenopodium album var. centrorubrum Makino

 

밭이나 빈터에 나는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1m 가량.

6~10월 개화. 줄기 끝에 황록색꽃이 달린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성숙한 잎과 열매는 약용한다.

한국(전역), 일본, 중국 동북 지방, 인도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는쟁이, 능쟁이, 붉은잎능쟁이, 도트라지

 

 

 

 

 

동양의 고전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명아주나 비름나물을 즐겨먹는 이는 얼음처럼 맑고 옥같이 깨끗하나

비단옷 입고 좋은 음식 먹는 사람은 종처럼 비굴하게 아첨도 마다않는다.

뜻은 담백함으로써 뚜렷해지고 지조란 부귀를 탐하면 잃고 마는 것이다.

(藜口莧腸者 多氷凊玉潔, 袞衣玉食者 甘婢膝奴顔,

蓋志以澹泊明 而節徒肥甘喪也)

 

채근담은 풀뿌리처럼 질박하고 담백한 삶을 권하는 고전이다.

책 제목의 나물 ‘菜’는 어떤 나물을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 속에서 명아주가 세 번, 비름이 한 번 언급되는 걸로 보아

저자는 이 제목에 명아주 나물을 마음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에서 명아주가 검소한 음식의 대명사로 나오는 까닭은

명아주가 가장 흔하고 맛이 담백하기 때문일 것이다.

명아주를 끓는 물에 삶으면 시금치나 비름과 비슷한 맛이 나고,

약초로서의 쓰임새도 다양하다고 한다.

 

 

내 고향 경상도에서는 이 명아주를 ‘도트라지’라고 불렀다.

그 이름에서 도틀도틀한 줄기와 열매와 뿌리가 저절로 떠오르니

내게는 명아주라는 뜻 모를 이름보다 더 친근하다.

 

명아주하면 청려장(靑藜杖)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청려장은 크게 자란 명아주의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인데

뿌리째 뽑아서 말려야 뿌리 부분을 손잡이로 쓸 수 있다.

이 지팡이는 아주 가벼워서 근력이 약한 노인이 쓰기에 좋고

손잡이의 오돌토돌한 돌기가 노인의 혈행을 좋게 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명아주를 말려서 만든 청려장을

그 연령에 따라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자식이 아비에게 바치는 청려장을 가장(家杖),

육십이 되었을 때 고을에서 주는 것을 향장(鄕杖)이라고 하고,

칠십이 되었을 때 나라에서 주는 것을 국장(國杖),

팔십이 되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것을 조장(朝杖)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어떤 고을에 國杖이나 朝杖을 짚은 노인이 나타나면

그 고을 수령이 직접 마중을 나가 예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런 저런 사연이 있는 까닭에 명아주를 만나면

선인들의 담백한 삶과 아름다운 풍습이 떠오른다.

청려장 짚을 날이 내게도 화살처럼 날아오고 있다.

 

 

2009. 11. 20.     꽃이야기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