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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1/가을에 피는 꽃

공단풀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

 

공단풀

Sida spinosa L.

 

들에 나는 아욱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30~60cm.

9~10월 개화. 꽃의 지름은 1.2 cm 정도이고 오후에는 꽃잎을 닫는다.

‘한반도의 귀화식물분포’ (임양재 & 전의식, 1980)를 통해 소개되었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 일본,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공단풀’은 70년대 말에 어느 공단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에서도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언제 어떠한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모른다.

 

1990년에는 서울 아현동의 한 가정집에서 비슷한 풀이 발견되어,

그 집 주인의 이름을 따서 ‘순애초’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적도 있다.

‘순애초’라는 이름이 지금은 통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

공단풀과 동일 식물로 확인되었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이 식물의 학명이 ‘Sida spinosa Linne’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종소명에 'spinosus'가 들어가면 가시가 많다는 뜻이나 

이 식물의 어디를 보아도 가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식물학자인 린네가 그보다 한 세대 앞서 간 스피노자를 기리며

종소명에다 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17세기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영어권에서 'Spinoza'로 쓰지만

유럽의 나라들마다 표기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한번 해 본 생각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에 철학자 스피노자는

살얼음판을 걷듯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처신했을 것이고,

과학자 린네 또한 그와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린네는 지인들의 이름을 식물명에 곧잘 사용했기 때문에,

그와 동병상린하는 마음으로 학명에 썼으리라는 심증이 간다.

 

스피노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교수직 제안을 사양하고,

유리 가공 기술을 배워 스스로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44 세의 나이에 폐질환으로 죽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유리가루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이라고 한다.

 

 

반세기 전 수많은 공단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거름이 되어

오늘날 우리의 풍요가 꽃 핀 것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 

순애, 공단, 스피노자 ... 시대와 지역과 신분을 떠나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조각그림들로 공단풀을 그려 보았다. 

 

공단풀의 열매는 수박풀 열매의 축소판처럼 정교하고 아름답다.

린네는 그 열매에서 유리세공 기술자, 스피노자를 만났을까?

아니면 잠깐 피었다 지는 이 꽃의 요절이 안타까워서였을까...

 

 

2012. 10. 2. 꽃이야기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