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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정체성이 모호한 식물, 세수염마름

 

세수염마름

Trapella sinensis Oliv.

 

연못이나 저수지에 자라는 참깨과의 여러해살이풀.

줄기가 물 위에 떠서 뻗어가며 꽃을 피운다. 7-9월 개화.

열매에 뿔 모양의 부속체 5개, 3개는 길이 1.5-5.0㎝, 끝이 말리며,

2개는 짧고 길이 0.2-1.2㎝ 가시모양으로 끝이 날카롭다.

[이명] 수염마름

 

 

 

 

 

 

세수염마름은 수염이 세 개 달린 마름이다.

이 식물의 열매에 달린 다섯 개의 부수체 중에서

세 개가 길며 카이젤수염처럼 끝이 말려있다.

보통 수염마름은 다섯 개의 뿔의 길이가 같다.

(세수염마름의 열매, 왼쪽 사진)

 

세수염마름은 자라는 환경과 전체의 모양,

특히 잎모양이 마름을 많이 닮았고 열매까지도 비슷한 형태인데,

밭에서 기르는 참깨과로 분류된다니 참 뜻밖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세수염마름의 꽃은 성주풀을 많이 닮았다.

성주풀은 ‘현삼과’이니 이 식물의 정체성이 더 모호해진다.

세수염마름을 보면 어릴 적 내 고향 이웃집에 사셨던

재미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생각난다.

 

이 분은 외모가 서양인 비슷해서 별명이 '미국사람'이다보니 

아예 끝이 꼬부라진 서양식 수염까지 기르고 다니셨다.  

이 할아버지가 서울 구경을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는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모이다시피해서 몇 날 며칠을 들었다.

라디오도 없던 그 시절에는 어느 집 사랑방에 모여 듣는

바깥세상 이야기가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이 할배가 경복궁인가하는 대궐 구경을 가서는

임금님이 앉던 자리인 용상에 한 번 앉아보고 싶더란다.

문은 열려있었고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만 있길래,

‘어차피 나를 미국사람으로 알건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성큼 성큼 들어가 용상에 앉아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더란다.

 

그 시대는 미국 사람은 무조건 정의롭고 힘 센 사람,

다시 말해서 ‘Good guy’로 간주되던 시절이었고,

게다가 영어로 한 마디라도 나무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 정도로 이 할아버지의 모습은 ‘돌연변이’에 가까웠고

생긴 모습답게 돌발적이고 재미있는 행동을 많이 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에

‘keep out’이라는 영문 한 줄이 덧붙었으리라 짐작된다. 

돌발적인 일들로 사회도 생태계도 변화하고 진화한다.

 

늘 변함없고 규칙적인 일상은 편안하나 따분해지기 쉽고

호기심 많고 모험적인 삶은 고단할지언정 날로 새롭다.

별난 식물, 세수염마름을 찾아 나선 일도 그러하였다.

 

2012. 9. 19. 꽃이야기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