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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그 곳에만 피는 꽃

바람 없이도 꽃가루를 날리는 나도물통이

 

나도물통이

Nanocnide japonica Blume

 

쐐기풀과 나도물통이속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0~20cm.

암, 수꽃이 따로 있으며 수꽃은 자주빛 꽃받침으로 싸여 눈에 잘 띄나

암꽃은 잎겨드랑이에 작고 희멀겋게 달려 관찰하기 어렵다. 

4~5월 개화. 한국(전남, 제주), 일본, 타이완, 중국에 분포한다.

[이명] 애기물통이, 화점초

 

 

 

 

 

식물은 동물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므로

곤충과 새, 바람과 물의 힘을 빌려 혼인을 한다.

예외적으로 나도물통이류의 식물은 내가 아는 한

제 힘으로 꽃가루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식물이다.

 

책에는 나도물통이가 풍매화로 분류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잔뜩 구부린 수술대를 순간적으로 펴면서

옆에 있는 꽃에게 꽃가루를 흩어뿌린다.

이 풀은 무리를 지어 살기 때문에 바람 한 점 없어도

뽀얀 꽃가루를 가까운 꽃에 잘도 뿌려댄다.

바람이 있으면 보다 멀리 꽃가루를 보내겠지만

근본적으로 바람에 의존해서 수분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래서 나도물통이의 꽃은 모양이 별나다.

이 꽃은 곤충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향기와 꿀과 색깔 고운 꽃잎을 애써 만들 이유가 없다.

꽃가루를 뿌려대는 탄력있는 수술과 이것을 받을 암술만 있으면 된다.

수술대의 끝에는 꽃가루를 담은 작은 바가지가 달려있다.

꽃잎은 없어도 수술, 암술을 갖추었으니 꽃은 꽃이다.

 

 

 

사흘 내내 나도물통이를 관찰한 적이 있다.

관찰이라기보다는 꽃가루가 터지는 순간을 촬영하려고 했었다.

꽃가루는 정오부터 오후 세시 사이에 여기저기서 터졌다.

어느 꽃봉오리에서 터져 나올 지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봉오리에서 다섯 개의 수술이 순서도 없이 펴지는데

한 수술과 다음 수술이 펴지는 시간 간격도 제멋대로였다.

 

사흘 동안 나도물통이 밭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단 한 컷도 그 꽃가루가 공중에 뿌려지는 순간을 잡지 못했다.

수술이 터지는 1/100초보다도 짧은 찰나를 포착하는 것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동안 꽃가루가 꾸준히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을 보니

온도나 햇볕, 바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듯했다.

그저 저마다의 때와 인연이 있어 터진 듯이 보였다.

 

그 수백, 수천 만 개의 꽃가루 중 어느 하나가

어느 암술머리에 앉아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우리들의 탄생도 그런 섭리 어드메 쯤에서 왔을 것이다.

 

2012년 3. 18.  꽃이야기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