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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꽃을 피우는 검정말

검정말

Hydrilla verticillata (L.f.) Royle

 

연못이나 개울물속에 사는 자라풀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꽃은 암수딴그루. 암꽃의 지름은 1mm정도이며 수꽃이 약간 작다.

8~10월에 개화. 어항속의 수초로 쓰인다.

한국(중부 이남) 및 유라시아, 호주의 온난한 지역에 분포한다.

 

 

 

 

 

검정말 꽃이 필 무렵 연못은 작은 우주가 된다.

물위에 하얗게 떠다니는 꽃과 꽃가루들은 밤하늘의 별이다.

가장 밝고 큰 별은 암꽃이고 수꽃은 작은 별이다.

그리고 수많은 꽃가루들이 은하수처럼 흐른다.

 

검정말의 꽃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꽃 중에서 가장 작았다.

그 꽃은 맨눈으로는 물위에 떠있는 먼지처럼 보이더니,

마이크로렌즈로 찍어서 확대하고 나서야 꽃인 줄 알았다.

그 작은 꽃들에서는 진주의 신비로운 빛이 감돌았다.

작은 꽃이지만 몇 개의 수술과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까지 보였다.

 

 

300여 년 전에 린네는 은화식물(隱花植物)이라는 용어를 처음 쓰면서,

수술 암술의 구분이 없고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는 ‘말(藻類)’을 양치류 등과 함께 은화식물로 분류했다.

린네가 이런 미세한 꽃의 구조를 제대로 관찰했는지는 의문이다.

 

그 후에 프랑스 식물학자 브로냐르는 은화식물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꽃을 피우는 식물을 현화식물(顯花植物)이라고 해서 식물계를 양분했다.

이 분류법은 현대 분류학의 발달에 따라 몇 가지 모순점이 밝혀지면서

‘은화식물’의 개념은 퇴색되었고, ‘현화식물’이라는 용어는 ‘종자식물’로 대체되었다.

 

식물학 관련 자료를 보다가 가끔 ‘현화식물’이라는 용어가 튀어나와서

늘 그 의미가 궁금했던 차에, 내친김에 한 번 알아본 것이다.

어떤 자료나 서적에서 ‘현화식물’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수십 년 전의 자료를 베껴온 것은 아닌지 눈여겨 볼 일이다.  

 

 

 

검정말은 여느 꽃처럼 열매를 만드는 ‘종자식물’이다.

때가 되면 줄기가 수면에 닿아서 물위에다 꽃을 피우고,

수꽃은 물속에서 피어서 물위로 올라와 떠다니다가

암꽃을 만나 꽃가루를 전해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

꽃과 꽃의 만남이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는 우주적 인연이 있다.

 

2011. 12. 24. 꽃이야기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