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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하얀 토끼를 등에 태운 별주부, 자라풀

 

자라풀

Hydrocharis dubia (Blume) Backer

 

느리게 흐르는 하천이나 연못에 자라는 자라풀과의 여러해살이수초.

8~10월에 개화. 암수한그루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한국(전역), 동남아시아, 호주 등지에 분포한다.

[이명] 수별(水鼈), 지매(地梅), 모근

 

 

 

 

자라풀은 잎이 자라를 닮았다고들 한다. 

잎의 뒷면에는 납작한 공기주머니가 붙어있어서

잎을 엎어 놓으면 영락없이 자라의 형상이 된다. 

같은 수생식물인 어리연꽃이나 수련의 잎은

자라풀의 잎과 비슷하지만 공기주머니는 없다.

 

추측건대, 자라풀은 수면에서 줄기를 옆으로 길게 뻗어가다가,

마디에서 다시 잎을 내고 뿌리를 내려서 번식하는 식물이므로,

그 과정에서 잎이 잘 떠 있으려고 공기주머니가 생긴 듯하다.

어쩌다가 줄기가 끊어져서 떨어진 무리는 물에 떠내려가다가

적당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일가를 이루는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자라풀은 물 표면에서 줄기를 옆으로 길게 뻗으며 자란다. 박해정님사진)

 

자라풀은 자라 ‘별(鼈)’자를 써서 ‘수별(水鼈)’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고전 중에 ‘별주부전’이라는 작자미상의 소설은

용궁에서 자라가 주부(注簿) 벼슬을 한 것으로 의인화한 이야기다.

(* 주부(主簿) : 고려시대의 하급 문관 관직)

 

별주부는, 주색이 지나쳐서 죽을병에 걸린 용왕을 살리려고

토끼를 속여서 용궁으로 데려간 충직한 신하였다.

토끼는 간을 산 속에 두고 왔다는 말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

뭍으로 올라온 토끼가, 간을 빼고 다니는 놈이 어디 있냐며

별주부를 조롱하고는 산속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들어온 별주부전이었다.

 

그 후에 알게 된 별주부전의 다른 판본에는

토끼가 용왕과 별주부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서

간 대신 똥을 줘서 자라를 돌려보냈다는 뒷얘기가 있었다.

기적적으로 용왕의 병이 나았다는 뒷얘기가 있었다.

용왕은 토끼똥을 먹고 병이 나아서 토끼에게 치하하고,

별주부와 화해시키는 극적인 해피엔딩이었다.

 

(자라풀의 옆줄기가 끊어지면 떠내려가다가  적절한 곳에 정착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시대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은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작은 짐승인 토끼도 이렇게 큰 아량을 베푸는데,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람이 무얼 못하겠는가?

 

자라풀 군락에서 한 포기가 떨어져 강물에 흘러간다.

하얀 꽃을 피운 자라풀이 천천히 떠내려가는 모습에

하얀 토끼를 등에 업고 가는 별주부의 모습이 겹쳐진다.

 

2011. 12. 18. 꽃이야기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