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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물 위에 내린 봄날의 눈꽃, 매화마름

 

매화마름

Ranunculus kazusensis Makino

 

논이나 늪에서 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50cm 정도 줄기를 뻗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4~5월 개화.

한국(서해안 일대의 논), 일본, 중국 동북지방에 분포한다.

[이명] 미나리말, 미나리마름.

 

 

 

 

 

 

물풀 중에는 무슨 ‘마름’이나 ‘말’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많다.

‘마름’과 ‘말’이 물풀을 두루 아우르는 말인지, 무슨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마침 수생식물을 전공한 박사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박사님에게 ‘마름’과 ‘말’은 어떻게 다른지 질문을 했더니,

‘식물학과 무관한 질문이니 고어(古語)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 강의교재에 나와있는 ‘수생식물목록’을 보니

식물학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보편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 목록에는 ‘말’ 종류가 27종, ‘마름’이 15종이 있었는데,

‘말’은 모두 잎이 물속에 있는 침수성식물이었고

‘마름’은 대부분 잎이 물에 뜨는 부엽성식물이었다.

생태적으로보면 이렇게 '말'과 '마름'이 분명히 다른데

분류학적으로 보면 이들이 여러 '과'에 흩어져 있어서,

칫 과학적 분류가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예외적으로 매화마름과 붕어마름류들만 

침수성식물이면서도 ‘마름’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붕어마름은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바로 매화마름이 ‘말’과 ‘마름’의 이름 질서를 어지럽게 해서

몇 년 동안이나 나는 적잖게 마음고생을 한 것이다.

 

매화마름에는 왜 ‘마름’이라는 돌림자를 썼을까?

 

 일본에서는 매화마름을 물속에 사는 조류(藻類)로 보아서

‘바이카모(梅花藻)’라고 하므로 우리말로는 ‘매화말’이 된다.

‘말’  종류는 물 위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식물들이다.

그러나 매화마름이 피면 물 위에 눈이 쌓인 듯, 매화천지가 되므로

매화를 사랑하는 우리 고유의 정서가 이 아름다운 식물을

물속의 ‘말’에서 물 위의 ‘마름’으로 끌어올린 것 같다.

 

매화마름은 원래 논이나 그 주변의 도랑에 흔한 잡초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자생지가 줄어서 멸종위기 2급 식물이 되었다.

나는 서해안에 가까운 몇몇 지역에서 매화마름이 사는 곳을 보고서

이 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한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곳은 자연수가 흘러 들어와서

이듬해 모내기철까지 물이 고여 있는 논들이었다.

그리고 농약을 쓰지 않아서 물과 풀밭의 벌레들이

자연의 질서대로 풍성하게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런 논들이 없어지면 매화마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셔널트러스트라는 환경보호재단에서

강화도의 한 동네에 매화마름이 자생하는 논을 사서 지키고 있다.

정작 예산을 가진 정부는 ‘자연보호’의 목청만 높일 뿐, 

행동은 민간단체처럼 적극적이지 않은 듯해서 씁쓸하다.

 

2011. 12. 22. 꽃이야기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