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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2/물 위에 피는 꽃들

순채(蓴彩)는 왜 우리 곁을 떠났을까?

 

순채

Brasenia schreberi J.F.Gmelin

 

얕은 연못에 사는 수련과의 여러해살이 수초.

어린 잎과 줄기는 우무같은 점액질로 덮이고, 성장한 잎은 물에 뜬다.

6~8월에 개화. 어린잎과 줄기는 식용, 원줄기와 잎은 약용한다.

한국(제주도, 충북, 울산 등 일부 지역), 동아시아,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서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 한다.

 

 

 

얕은 연못에서 자라는 순채는 2500여 년 전의 문헌인

시경(詩經)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은 나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순담(蓴潭)계곡, 순동리(蓴洞里), 순호리(蓴湖里) 같은

지명이 있을 정도로 순채가 많이 나고 널리 재배도 했지만 

요즈음은 그 자생지가 줄어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다행히도 몇몇 뜻있는 곳에서 자생지를 보전한 덕분에 

애써 찾으면 만날 수는 있는 식물이다.

 

(순채의 암꽃(왼쪽)과 수꽃(오른쪽))

 

무리지어 핀 순채 꽃을 유심히 보면, 모양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꽃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그날 핀 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전날 핀 꽃이다.

순채 꽃은 딱 이틀만 피는데, 첫날 피는 꽃은 암꽃이다.

이 때 수술은 암술의 밑동을 에워싼 붉은색의 낮은 울타리처럼 보인다.

암꽃 상태에서 다른 수꽃의 꽃가루를 받고 저녁이 되면 물속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꽃이 물 위로 나올 때는 수술이 길게 자라서 첫날과 다르게 보인다.

이틀째 꽃에서 암술은 수술에 둘러싸인 채 시들어 있다.

순채처럼 암술과 수술을 시간차를 두고 성숙시켜,

자가수분을 피하는 것은 식물의 세계에서 흔한 일이다.

그런데 순채에는 성전환보다도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있다.

 

(풍매화로 알려진 순채에도 벌들이 찾아든다)

 

이 꽃의 전형적인 풍매화이다.

풍매화는 바람이 수분을 해 주니까 꽃을 예쁘게 꾸밀 필요가 없지만

이 꽃은 도무지 풍매화답지 않게 예쁘다.

게다가 꿀벌까지 부지런히 이 꽃 저 꽃을 넘나든다.

‘자연은 결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평소 생각이 맞다면,

순채는 바람에 의해 수분을 하면서도 벌에게 수분보험을 든 것이다.

식물의 세계에는 실제로 이런 다양한 보험이 성행하고 있다.

 

이렇게 수분보험까지 들 정도로 똑똑한 순채가

지금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

문헌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은 순채를 즐겨 먹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대규모로 수출도 했다는데 말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환경 파괴니 생태계의 변화니,

무분별한 채취 탓이라고 늘 써먹는 모범답안을 내놓는다.

 

나는 사람 사는 세상의 정이나

식물 세상의 정이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순채는 우리가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2011. 10. 31. 꽃이야기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