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꽃나들이 1/아지랭이피는 들녁

꿩 보러 다니시던 할매와 꿩의밥

 

 꿩의밥

Luzula capitata (Miq.) Miq.

 

산과 들의 풀밭에 자라는 골풀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10~20cm.  4~5월 개화.

한국(전역) 및 동북아시아에 분포한다.

[이명] 꿩의밥풀, 꿩밥

 

 

 

 

 

 

 

“느 할매 새댁 때 날마다 이리로 꽁 보로 댕겼데이...”

할머니 산소 벌초하고 오는 길에 만난 노인 한 분이 하신 말씀이다.

“시집살이 고달픈 새댁이 꿩이나 구경하러 다녔다고요?”

“아이다. 이 동네에 느 콩밭이 있었는데, 콩 숨가(심어)노므

꽁들이 파먹으이끼네 그거 쫓을라꼬 새벽바람에 왔제.”

“그러면 봄부터 가을까지 꿩을 지키고 있었어요?”

“그게 아이라. 콩 싹이 틀 때까지 한 보름 오고,

콩 익을 때 한 보름 지키고 있었지러.”

 

콩밭은 고향집에서 이십 리나 되는 깊은 산중이다.

할머니는 동이 트기 전, 어스름 새벽길을 걸어서

꿩들이 내려오기 전에 그 곳에 가셨던 것이다.

일찍 일어나 식구들 아침을 지어놓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어린 아버지를 등에 업고,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그렇게 콩밭에 가셨을 것이다.

 

 

콩을 심을 무렵이면 산자락 풀밭에 꿩의밥 꽃이 핀다.

할머니는 꿩의밥을 보면서 이런 지청구를 했을게다. 

‘이 눔의 꽁이 지 밥이나 쳐 묵을 것이지

와 사람 묵을 콩을 파 묵어서 새빅부터 이 고생이고...’

 

숲 속에 숨어서 콩 파먹을 기회만 노리던 꿩은

할머니의 지청구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깟  깨알만한 꿩의밥알 백 개를 따 먹는 거보다

콩 한 개 서리해먹는 게 훨씬 배부르고 맛있거든요...

그리고 아직 꿩의밥은 열리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그러니 시집살이에 지친 새댁이 잠깐 졸기라도 하면

꿩들이 얼씨구나 하고 콩밭을 헤집었을 게 뻔하다.

 

지금 할머니는 꿩을 지키던 산자락에 누워계시고,

해마다 한식 무렵이면 그 무덤에 꿩의밥 꽃이 핀다.

반백이 넘은 손자는 아스라한 기억과 상상을 넘나들며,

 꿩을 보러 다니던 그 할매에게 정성껏 절을 올린다.

돼지털 카메라인가 뭔가를 잡고 아주 오래 오래...

 

 

2011. 9. 29.  꽃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