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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1. 4월 2~6.... 탐사하지 못한 날들의 기록

 

 

아침에 만항재를 넘었다.

어제 복수초를 보던 곳인데 이런 날씨에서는 꽃을 기대할 수 없다.

안개 속에서 새들도 침묵하고 있다.

 

 

이런 강원도 산간은 아직도 겨울이다.

오늘 같이 흐린 날은 겨울이었다가 날씨가 맑으면 봄이 되는 곳...

며칠 더 강원도에 머무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영남 땅으로 넘어갔다.

 

 

안동 부근의 깽깽이 군락에서도 겨우 찾아낸 것이 이정도였다.

온 몸을 다 합쳐도 겨우 도토리만하다.

이런 경우.. 지나고 난 얘기지만 꽃이 피는데 한 열흘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제 고향으로 들어간다.

열 살 때 고향을 떠난 이후, 봄에 고향에 가는 것은 46년만에 처음이다.

 

 

그 다음 날...어릴적 소먹이던 골짜기를 찾았다.

그때는 꽤 넓직한 골짜기 풀밭이 숲으로 변해있었고

그 많던 할미꽃은 오솔길 가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할미꽃은 숲이 깊어지면 설자리를 잃어간다.

할미꽃은 씨앗을 바람에 날려 번식하기 때문에 숲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고,

또 무덤가처럼 양지바른 곳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우리집 뒷동산이다.

저 소나무가 어릴적 단오날 그네 매어놓다 타던 곳인데...

50년이나 지나도록 별로 자라지 않은 듯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너무 들뜬 탓일까...

골짜기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크게 고꾸라지고 말았다.

심한 통증에 5분 동안 그자리에서 수족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과연 이 자리에서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한 십분쯤 뒤 정신을 수습해서 몸을 꼼지락거려보니 다행히도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듯하다.

너무 심한 통증에 더 이상 산을 다니지는 못하고...

차를 몰고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 편한 길을 걷는 것도 힘들어 갈매기만 보다가 돌아왔다.

 

 

그 다음 날... 다리가 퉁퉁부었고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집 뜰에 심어놓은 매화가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다행이다.

부모님은 부산 동생집에 며칠 다니러 가셔서 내가 혼자 아플 수 있어서 좋았다.

 

 

뒷동산 소나무 아래 할미는 집에서 50 걸음 밖에 안된다.

엉금엉금 기어서 무덤가 풀밭에서 오후 내내 딍굴면서 보냈다.

 

 

멀리 다닐 수 없으니 하루 종일 이 할미하고만 놀아야 했다.

벌들이 심심찮게 날아와 줘서 고마왔다.

그날 저녁 부산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그 다음날, 집에서 가까운 곳에 고향 후배를 찾았다.

초면이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야생화를 좋아한다는 것만 알고 지내는 터이다.

고맙게도 내 야생화 탐사를 안내하려고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가 많이 불편해서 꽃을 보고도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 다음날, 다리가 조금은 나은 듯 해서 어제 후배가 가르쳐 준 곳을 다시 갔다.

역시 후배가 먼저 나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곳은 낙동정맥이 지나가는 곳으로

얼레지, 너도바람꽃, 노루귀, 처녀치마, 선괭이눈, 꿩의바람 등이 살고 있지만

지금 제대로 피어있는 것은 노루귀와 너도바람 뿐,

선괭이, 얼레지, 꿩바람은 아직 이른 편이었다.

 

 

너도바람꽃은 그리 흔한 꽃이 아닌데

내 고향에 있으니 참 반가운 일이다.

고향의 꽃이라서 그런가 더 정이 간다.

 

 

좀 이쁘게 담아주고 싶은데 계곡에 자리를 잡아서

도무지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마땅치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봄이 이르다.

한 보름후에 다시 오기를 기약하고 후배와 헤어졌다.

 

 

다리 아픈 사람이 만만하게 갈 수 있는 곳은 바닷가 해변도로 뿐이다.

민들레가 바닷가 언덕에 피었는데 바다와 한 화면에 들여놓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 등대풀이다.

호남에 근무할 때 참 보기어려운 꽃이었는데

내 고향에 살고 있었구나. 반갑다 등대야!

 

 

개질경이다. 분명히 귀한 풀은 아닐터인데 나는 처음 본 풀이다.

그리고 올들어 7번째 처음 본 풀이다.

지금까지 처음 본 풀을 열거하자면,

거문도 수선화, 제주도 수선화 (물론 국생종의 정식명칭은 아니지만 나는 별도의 종으로 본다)

산쪽풀, 세복수초, 갯무, 산괭이눈의 6가지였었다.

 

 

개질경이는 질경이과의 식물로,

질경이는 털이 없고 개질경이는 솜털이 있는 차이가 있다.

갯질경이는 갯질경이과인데 가을에 노란 꽃이 핀다.

똑같이 바닷가에 사는 녀석들이라 이름부터 헷갈리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