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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일기/탐사일기

2011. 2. 22 (화) 세한도(歲寒圖)에 수선화를 더하다

 

 

장흥 노력항에서 장흥-성산포간을 운항하는 오렌지호를 탔다.

이 배는 인원290여명, 승용차 58대를 실을 수 있고,

비수기 평일이라도 예매하지 않으면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다.

나는 30,000원  내 차는  58,000원(차종마다 요금이 약간씩 다르다)을 내고 탔다.

터미널 이용료까지 왕복 18만원이 든다.

 

 

좌석이 지정되어 있다. 배가 출발했는데도 빈자리가 많았다.

그렇다. 선실에 오지 않은 사람들은 승용차에서 의자를 한껏 제끼고 수면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객실의 의자는 뒤로 젖혀지지 않으며, 계속되는 안내방송 때문에 시끄럽기도 할 터였다.

나도 이 배를 타기 위해 다섯시에 일어나 졸음을 참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첫 배는 8시 30분에 출발한다. 쾌속선이라 한 시간 반이면 제주에 갈 수 있으나.

양식장 어민들의 반대로 출발후 30분은 저속 운행을 한다. 그래서 공식 소요시간이 한 시간 50분이다.

이 저속운항구간 20분 정도 뒷 갑판을 개방해서 다도해의 풍경을 구경하도록 해준다.

이 시간이 지나면 시속 70km정도로 고속운항을 하기 때문에 실외로 나갈 수가 없다.

유난히 너울이 심해서 배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거문도에 이어서 또 롤러코스트를 탔다.

연일 고마운 일이다. 두 시간 동안 놀이기구를 타는 행운을 또 잡다니 ....

 

 

한라산 자락의 어느 곶자왈에서 세복수초를 만났다.

곶자왈은 암석과 나무,덩굴식물들이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수많은 세복수초가 이제 막 싹을 올리고 있었는데 단 한 송이가 그래도 노란 꽃잎을 조금 열고 있었다.

한눈에도 이것이 복수초나 가지복수초와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올해 한라산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세복수초가 예년보다 많이 늦다고 한다.

 

 

내가 만만찮은 비용을 써가며 제주에 홀로 온 것은 이곳을 보고 싶어서였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에 있는 대정향교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세한도가 탄생했다고 한다.

 

 

첫날 찍은 사진이 뭔가 마뜩찮아서 이틀 후, 제주를 떠나기 전에 다시 가서 찍은 사진이다.

옛맛이 나도록 흑백 톤으로 찍어보았다.

세한도는 이 풍경을 묘사한 그림은 아니다.

세한도는 귀양살이를 하는 추사 자신의 쓸쓸하고 황량한 심경을 담은 문인화다.

다만 분위기로 보아서 이 대정향교가 세한도의 모델이 된 것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세한도를 연구한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 그림에 등장하는 4그루의 나무 중 소나무는 오른쪽 한 그루밖에 없고

나머지 세 그루는 잣나무나 또는 다른 나무일 거라고 추정한다.

대정향교에는 소나무 옆에 500년도 넘었음직한 느티나무가 있다.

추사는 소나무 옆의 나무를 느티나무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 같고,

소나무와 절개의 쌍벽을 이루는 잣나무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추사가 그린 소나무는 곰솔이었다.

추사의 소나무에도 왼쪽 굵은 가지가 잎을 달고 있지 않았는데...(16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대정향교에는 이 왼쪽 가지가 썩어서 베어나간 지 꽤 오래된 흔적을 보여준다.

 

 

내가 정작 보고 싶었던 것은 이곳에 피어있을 수선화였다.

1996년이나 97년에 법정스님이 이곳을 둘러보러 오셨다가

땅위에 나딩굴고 있는 수선 다섯 뿌리를 챙겨 가셨다는  곳이다.

대정향교 주변에는 마늘 농사를 짓는 땅이 많은데

아마 농부들이 잡초 뽑듯이 밭가에 던져놓은 것이었으리라.

 

 

역사적인 풍경이라고 이리 딍굴고 저리 딍굴면서....

세한도에 수선화를 집어넣으려 했지만,

그럴싸한 그림은 되지 않는다.

 

다만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존경하는 추사와 법정,

두 분의 큰 스승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꽃의 크기를 자로 재본 결과 거문도의 수선화와 크기는 꼭 같았다.

제주의 수선화는 거문도 수선화에 있는 금잔(副花冠이라고도 함)은 없고

노란색 흰색이 어울려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제주도, 특히 남제주의 밭에서는 두 가지 덩어리가 흔한 것 같다.

검은 현무암 돌덩이는 밭 가에 모여서 바다의 바람을 막아주는 밭울타리가 되고

수선화의 작은 뿌리 덩이는 돌담 아래서 이렇게 소담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길 옆에는 관광객을 보기 좋으라고

수선과 유채를 심어놓은 곳도 많았다.

 

제주 1일차 탐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