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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낮은 숲을 이루는 나무

참빗의 추억을 불러오는 참빗살나무

 

참빗살나무      Euonymus hamiltonianus Wall.

 

중부 이남의 산지에서 3~8m 높이로 자라는 노박덩굴과의 갈잎소교목.

5~6월에 새가지 끝부분에 지름 8mm 정도의 녹백색 꽃이 모여 핀다.

장주화와 단주화가 있으며 열매는 4각 상자모양이고 붉게 익는다.

 

 

 

 

참빗살나무의 이름은 옛날에 머리를 빗던 참빗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참빗은 전통 머리빗 중에 가장 빗살이 촘촘한 반 뼘 길이의 작은 빗이었는데,

빗살간의 간격이 머리카락 한 올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섬세하여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으로 머릿결을 대강 정리한 다음에 곱게 다듬는데 쓰였다.

 

(참빗. 좌우측 마감부분의 넓은 부분을 참빗살나무로 만들었고 가운데 넓은 부분은 대나무다)

 

참빗은 어여쁜 아가씨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을 먹여 윤택을 더하고

가르마 양쪽으로 머릿결을 곱게 빗어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내가 겪은 참빗의 용도는 그런 고운 상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집안에 수도가 없었던 옛날에는 요즘처럼 자주 머리를 감을 여건이 되지 못했다.

지금 세대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옛날의 빗질은 요즘의 머리감기나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참빗질은 머리카락에 묻은 온갖 먼지와 때를 제거하는 일이었고,

그중에 압권은 머리카락에 기생하는 이, 즉 서캐를 털어내는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참빗을 서캐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 무렵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열흘에 한 번 정도는 참빗질을 했는데

주된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머리에 기생하는 이를 털어내는 일이었다.

어린아이들에게 그 빗질은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촘촘한 빗살은 머리카락이 뽑힐 정도로 올올이 훑어 내렸고

날카로운 빗살에 긁혀 머리통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러한 고통은 중학생이 되어 머리를 박박 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참빗살나무의 꽃(왼쪽)과 열매(오른쪽))

머리카락의 때와 서캐를 제거하는 섬세한 빗살은 대나무로 만들었다.

참빗살나무는 빗살 부분의 좌우측 끝을 마감하는 목재로 쓰였는데

빗살과 같은 대나무로 만들기도 했고 고급 빗은 소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활이나 도장의 재료로도 쓰인 걸 보면 재질이 단단한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참빗살나무는 노박덩굴과의 여느 식물처럼 귀여운 꽃을 피우고 예쁜 열매를 맺는다.

꽃은 백록색 꽃잎 넉 장에 빨간 꽃밥을 단 수술 네 개가 달리는데

암술이 수술보다 긴 장주화와 그 반대인 단주화가 있어서 가려보는 재미가 있다.

작은 네모 상자처럼 생긴 열매는 꽃이 없어도 참빗살나무임을 알아보게 한다.

그리고 가을에 붉게 물 드는 단풍과 함께 다홍색으로 익는 열매 또한 아름답다.

 

(가을의 참빗살나무. 한라산)

참빗살나무가 요모조모 예쁜 구석이 있기는 해도 역시 그 이름이 주는 추억이 짙다.

그런 고통을 주던 빗질을 겪어본 사람들은 점점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머지않아 아무도 이 나무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세상이 올 걸 생각하면

여기 이 작은 기록을 남겨놓는 일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