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나무 Juglans mandshurica Maxim.
지리산 이북의 산지 및 계곡에서 15m 정도 자라는 가래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잎차례 길이가 1m에 이르며 길이 15cm 정도의 7~17개의 작은잎으로 이루진다.
5월에 수꽃차례는 한뼘 정도 아래로 늘어지고 암꽃차례는 반뼘 높이로 곧게 선다.
가래는 옛날에 쓰던 커다란 삽이다.
나무로 만든 삽 가장자리에 초승달모양의 쇠붙이를 덧대고 삽날 양쪽에는 밧줄을 매어
세 사람이 밭을 갈거나 흙을 떠내던 상당히 원시적인 농기구다.
삽날 넓이가 요즈음 쓰는 삽과 별 차이가 없으나 가벼운 삽을 만들 기술도 없고
쇠붙이가 귀한 시대에 삽 자체의 무게 때문에 세 사람이 힘을 모아서 쓰던 도구로 보인다.
가래나무의 이름은 이 가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보편적이다.
길쭉한 삽날의 끝부분을 쇠붙이로 두르고 양쪽 귀에 밧줄을 꿰는 구멍을 뚫은 가래 삽날이
가래나무의 열매나 열매를 쪼갠 단면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자로도 가래나무 추(楸)와 가래 초(鍬)가 같은 추(秋)자 음부(音符)를 쓰고 있다.
가래 열매는 호두보다 길쭉하며 속껍질도 두껍고 단단하다.
호두가 중국에서 들어와 널리 재배되기 전에는 가래 열매를 먹었다.
가래나무의 속명 Juglans는 라틴어로 ‘주피터의 단단한 열매’라는 뜻이라고 한다.
신들의 왕인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이름을 쓴 건 그만큼 열매가 영양이
풍부하다는 함의가 있는 듯한데, 아마 같은 속의 호두에 해당하는 의미일 것이다.
숲에서 가래나무를 찾아다녀보니 어슷비슷한 잎을 단 나무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를테면 가죽나무, 참죽나무, 굴피나무, 들메나무, 옻나무, 소태나무 등등이었는데
도감에는 이들처럼 비슷한 깃꼴겹잎을 내는 나무가 백여 종 가까이 있었다.
비슷한 나무들을 가려보는 재미로 몇 달 관찰한 결과로는 가래나무의 잎이 그 중 가장 컸다.
우산을 펼친 듯한 모양으로 한여름까지 성장한 잎차례는 양팔을 벌린 폭 정도나 되었다.
훤칠하게 뻗은 줄기에 시원하게 자라난 그 깃꼴겹잎을 보면 어떤 위엄까지 느껴진다.
깃꼴겹잎은 과거에 쓰던 한자어 식물용어로 ‘우상복엽’(羽狀複葉)이다.
요즘 쉬운 우리말로 정리한 식물용어를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박물관으로 보내기 전에 가래나무에게 감투 한 번 씌워주고 싶었다.
‘우상복엽대왕 가래나무’, 나처럼 나무 공부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쓸만한 별명이다.
신들의 왕이 들어간 속명 '주피터의 열매'에도 걸맞은 호칭이 아닐까 싶다.
2020.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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