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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낮은 숲을 이루는 나무

도깨비와 개암 열매 이야기

개암나무         Corylus heterophylla Fisch. ex Trautv.

 

산지의 숲 가장자리에서 2~3m 높이로 자라는 자작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3~4월에 2년지 끝에서 노란 수꽃은 아래로 쳐지고 붉은 암꽃은 위로 핀다.

열매는 길이 2.5cm 정도로 종 모양의 포에 싸여있으며 8~9월에 익는다.

 

 

 

옛날에 한 나무꾼 소년이 깊은 산골에서 정신없이 개암을 따다가 날이 저물었다.

어둠 속에서 도깨비들이 나타나 도깨비방망이로 뚝딱뚝딱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파티를 벌이는 걸 보고 몹시 배가고파서 저도 모르게 개암 한 알을 깨물었다.

개암 껍질이 깨지는 ‘딱’소리에 도깨비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자

소년은 도깨비방망이를 주워 와서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 욕심쟁이 영감은 소년처럼 하다가 도깨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하고 왔다.

 

개암 열매가 익어가는 걸 보고 문득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옛날 얘기가 떠오른 것이다. 

가을의 초입에 산에서는 여러 가지 먹을 만한 열매가 익는다

그 중에 머루, 다래, 으름, 돌배 같은 것들은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달리는 데

개암은 키 작은 나무에 열려서 아이들도 따먹기가 좋았다.

작은 밤 모양의 개암 열매는 껍질이 딱딱해서 어금니로 살짝 깨물어 쪼개어야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도는 부드러운 알갱이를 맛볼 수 있었다.

 

개암은 어릴 적에 소 먹이러 다니던 동네 서쪽 골짜기에 많이 있었다.

소를 부리는 건 어른들의 일이고 소를 먹이는 건 아이들의 중요한 일과였다.

아침에 소를 개울가 풀밭에 매어놓고 점심을 먹고는 고삐를 풀어 놓았다.

아침부터 소를 풀면 소들이 너무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했던 것 같다.

동네 소들은 무리지어 서쪽 골짜기로 가서 먹고 싶은 풀을 배불리 뜯어 먹었다.

해가 기울 무렵 아이들은 소고삐를 들고 요령소리 들리는 곳으로 소를 찾으러 갔다.

소가 멀리 가지 않은 날에는 아이들의 놀 시간이 많아져서 골짜기에서 가재도 잡고

머루나 개암을 따먹거나 도라지도 캐면서 어둑해질 때까지 놀다가 왔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밤보다 조금 못하다는 뜻으로 개밤이라고 부르다가 개암이 되었다고 하며,

과일 종류가 많지 않았던 16세기 이전에는 제사상에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무의 세계1, 박상진)

 

옛날에 소 먹이며 놀던 산골짜기는 5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소들이 사라진지 오래여서 숲은 거목들의 밀림이 되어 추억의 개암을 찾을 수 없었고

계곡 초입의 밭 언저리에서 몇 그루 개암나무를 만나 재회의 정을 나눌 따름이었다.

 

2020. 8. 19.

 

 

 

 

참개암나무   Corylus sieboldiana Blume

 

주로 남부 지방의 볕이 잘 드는 산자락에서 2~3m 높이로 자란다.

잎과 꽃은 개암나무와 큰 차이가 없으나 수꽃차례가 더 길게 늘어진다.

열매 포가 전체를 호리병 모양으로 싸고 있어 병개암나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