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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자주 보는 떨기나무

싸리나무에 큰절 올리는 사연

싸리    Lespedeza bicolor Turcz.

 

전국의 산지에서 키높이 남짓 자라는 콩과의 갈잎떨기나무.

7~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홍자색의 꽃이 총상꽃차레로 핀다.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 여름날 활짝 핀 싸리꽃 무리를 만났다.

간간이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도 벌들은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기에 바쁜데

초록 잎사귀들 사이에 점점이 수놓인 붉은 꽃들은 어느 옛날의 원피스 무늬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을 흥얼거리며 추억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는 내게 싸리둥주리를 만들어주셨다.   

내 손에 맞는 작은 낫으로 소꼴을 베어 둥주리에 가득 채워 돌아갈 때는 

나도 드디어 밥값할 나이가 되었구나하는 뿌듯함으로 으쓱거렸다.  

그리고 한두 살을 더 먹으면서 좀 더 난이도가 있는 소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제일 좋은 불쏘시개가 자잘한 싸리나무 가지였다.

 

가을에 고구마를 캐면 싸리를 촘촘히 엮어 만든 뒤주에 갈무리를 해놓고 겨울을 났다.

긴긴 겨울밤에 깎아먹거나 화로에 구워먹기도 하면서 뒤주가 빌 때 쯤 보리와 감자가 나왔다.

철사토막조차 귀했던 그 시절에는 병아리도 싸리나무로 짠 둥지 속에서 길렀고

여름에는 싸리로 통발을 엮어 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조금 외딴 집은 싸리를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도 싸리문으로 달았다.

옛날 시골의 대문 역할을 했던 사립문은 아마 싸리문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서울로 전학을 가서 싸리와 영이별인가 싶더니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재회를 했다.

자매학교 학생들이 위문품을 보내오면 그 답례로 싸리비를 한 트럭씩 보내주었고,

부대에서도 월동에 꼭 필요한 도구여서 겨울의 초입에 며칠씩은 싸리 채취를 했다.

 

돌이켜 보면 싸리는 살아오는데 여러 가지로 고마운 나무였다.

풍성하게 꽃 피워 꿀을 주었고 제 몸을 소신공양해서 밥을 짓고 온돌을 덥혔다.

싸리비가 닳아질 때마다 주변이 깨끗해졌고 울타리가 되어 삶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자잘하고 낭창한 가지들은 온갖 생활도구로 엮여져 물건을 담고 날랐다.

그 중에 가장 고역은 지게에 얹는 바구니인 발채 노릇이었을 것이다.

발채는 싸리를 촘촘하게 발처럼 엮어서 거름 같은 걸 퍼 나를 때 쓰였기 때문이다.

 

옛날에 어떤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고 금의환향하는 길에 싸리나무에게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까닭인즉슨 서당에서 훈장님에게 싸리회초리로 종아리 맞으면서 공부한 은혜에 감사한 것이다. 

싸리가 베푼 많은 공덕 중에서 으뜸이 사랑의 회초리가 되어 사람을 길러낸 일이 아닐까.

나 역시 싸리 회초리를 원망하며 자란 세대지만 이제는 종아리 맞던 그 추억도 그립다.

문명이 바뀌어 싸리도 이제 편히 쉴 때가 되었다.

나도 싸리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다.

 

2020. 8. 17.

 

 

 

 

조록싸리     Lespedeza maximowiczii C.K.Schneid.

 

전국의 산지에서 키높이 남짓 자라는 콩과의 갈잎떨기나무.

잎은 3출엽으로 뒷면에 짧은 털이 밀생하고 끝이 뾰족하다.

6~7월에 길이 2~4cm의 총상꽃차례에 홍자색의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