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제비싸리 Amorpha fruticosa L.
숲 가장자리나 길가에서 키 높이 남짓 자라는 콩과의 갈잎떨기나무.
5~6월에 한 뼘 정도되는 이삭모양꽃차레에 짙은 자주색 꽃이 핀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사방용으로 도입된 이래 전국에 야화되었다.
족제비싸리를 처음 만난 건 차를 몰고 가던 길가였다.
거무튀튀하게 익은 무슨 이삭인가 했더니 꽃인 걸 알고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꽃 중에 그렇게 짙은 색의 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식물은 피폐해진 이 땅의 녹화를 위해서 모셔온 용병식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외국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사방오리와 함께
족제비싸리는 우리나라의 산림녹화와 산사태방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용병들은 모두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고 성장이 빠르고 번식력이 좋다.
(이우락 님 사진)
척박한 땅에서 고생하며 안정시킨 토양에서 다른 나무들이 자라 숲 그늘이 지면
족제비싸리는 미련 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양지로 이주한 곳이 바로 철도나 도로변이어서
차를 타고 다닐 때 흔히 만나게 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었다.
아까시나무처럼 지나치게 번져서 애물단지도 되지 않았으니 그 역시 기특하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족제비싸리는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정착한 걸로 알려졌는데
이름까지도 일본 이름 이타테하기(イタチハギ, 鼬萩)를 그대로 번역해서 쓰고 있다.
이 나무의 꽃차례가 족제비의 꼬리를 닮았다는데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는 한다.
그나마 꽃 색깔 indigo 앞에 욕설을 붙인 영어명 ‘Bastard indigo’보다는 훨씬 점잖다.
영어 이름에 들어간 인디고(indigo)는 검은색에 가까운 청색이다.
그런데 꽃이 필 때는 몇 걸음만 떨어져서 보아도 영락없이 아주 짙은 갈색이다.
인디고색 꽃부리에 보색에 가까운 주황색 꽃밥이 혼합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그 인디고색이 여간 고상하지 않고
주황색 꽃밥이 멋진 대비를 이루어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거기에 토박이식물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걸 상기하면 더욱 가상하게 여겨져서
풀꽃 시인 나태주의 시가 나무인 족제비싸리 꽃에게도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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