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Rosa multiflora Thunb.
전국의 마을 주변이나 낮은 산지에서 2~4m 정도 자라는 갈잎덩굴성나무.
5~6월에 가지 끝에서 지름 3cm 정도의 흰색이나 연분홍색 꽃이 모여 핀다.
‘아버지, 시골이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같이 저녁을 먹다가 아들이 무심코 한 말이다.
아들이 말하는 ‘시골’은 곧 아버지인 나의 고향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향이 있어서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들이 참 안쓰러웠다.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나의 근무지를 따라 여러 지방으로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고향이 없다.
고향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고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이라야 의미가 더 깊다.
그리하여 마음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아들이 그렇듯이 산업화와 도시화 시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고향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들의 기억창고에는 찔레꽃이 봄마다 소박하게 피는 풍경과 그 상큼한 향기가 없다.
배고픈 시절 봄에 돋아나는 찔레순을 벗길 때 물기와 함께 터져 나오던 젖은 향기와
보드랍게 씹히던 감각하며 입안에 맴돌던 달작지근한 맛의 추억이 없는 것이다.
백난아가 불렀던 국민가요 찔레꽃은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으로 시작한다.
찔레꽃은 대개 흰색이지만 작사자의 고향에서는 붉게 피는 찔레꽃이 많았던 모양이다.
혹자는 해당화를 홍찔레로 부르는 지방이 있다고도 하고 드물지만 분홍색 찔레였다는 추측도 한다.
색깔이야 어떠하든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고향과 찔레꽃은 바늘과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
모르기는 해도 우리나라 방방곡곡 찔레꽃이 피지 않는 마을은 없을 것 같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곳이 고향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시는 변하지 않은 곳이 드물다보니 정들고 그립고 애틋한 그 무엇이 없다.
사람들의 이주도 빈번하여 끈끈한 유대로 이어진 일가친척이나 친구도 거의 없다.
다소 지나친 표현일는지는 몰라도 찔레꽃이 피지 않는 곳은 도무지 고향답지가 않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도시 뿐만 아니라 두메산골의 모습도 여러 번 바뀌었다.
초가집이며 동네 우물, 징검다리, 물레방아, 쥐똥나무 울타리, 송아지 울음소리처럼
수많은 정겨운 것들이 사라져 갔고 어릴 적 타고 오르던 큰 나무들도 많이 없어졌다.
찔레꽃은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갔어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거목은 늙어 죽지만 덩굴은 스러지고 다시 나면서 옛 모습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꽃나들이 4 나무에 피는 꽃 > 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산별곡의 주인공 머루와 다래 (0) | 2020.08.07 |
---|---|
종덩굴 (0) | 2020.08.05 |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 (0) | 2020.08.02 |
숲속의 관현악단 등칡 (0) | 2019.12.14 |
덩굴과 아주 작은 나무들 목록 (0) | 2019.11.08 |